“첫 문장은 가급적 빨리 써라”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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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난다. 걸어서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준다. 일하러 간다.

이 평범한 아빠는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무크(52·사진) 씨다. 계간 ‘문학동네’ 2006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산문 ‘작가의 일상’ 첫 부분이다. 노벨 문학상 발표 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파무크 씨의 글이다.

하루 일과를 전하는 형식이지만 작가의 ‘글쓰기 매뉴얼’이 상세하게 정리돼 흥미롭다.

파무크 씨가 글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날 썼던 부분을 읽는 것. 마음에 안 들면 쫙 찢어버린다. “책이 나왔을 때 비평가들이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미리 없앤다는 것이다.

‘첫 문장 쓰는 법’에 대한 파무크 씨의 조언은 “가급적 빨리 쓰라”는 것. 심지어 전날 좋은 문장이 떠올라도 쓰지 않다가 다음 날 쓴다고 한다. 그래야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이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쓰다가 막히면? 파무크 씨는 앉아서 머리를 싸매지 않고 일어나서 돌아다닌다고 했다. 걷기도 하고 냉장고도 뒤지고 하면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대여섯 개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쓸 때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무크 씨는 외부와 팩스로만 연락할 뿐 전화 코드를 뽑아놓고 자동응답기도 안 쓴다고 말했다.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 땐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줄 신문기자가 날 찾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갖고 전화코드를 꽂기도 한다고 유머러스하게 말하면서도, 글을 쓸 때는 두문불출하면서 집중한다고 털어놓는다. 스프링 노트에 만년필로 집필하는 그는 “글을 많이 썼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만년필의 빈 카트리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는, 자기만의 ‘동기 부여 비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문학에 대한 엄격함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좋은 소설은 어떻게 쓰입니까?”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질문을 두고 파무크 씨는 후자는 직업과 출세를 원하는 사람이, 전자는 예술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하는 질문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작가들에게 단호한 충고도 한다. 그는 “당신이 글 쓰는 일을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제스처, 드라마틱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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