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3년 러 작곡가 차이콥스키 사망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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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 차이콥스키는 1893년 11월 6일 사망했다. 그의 사인(死因)을 두고 아직까지 논란이 분분하다.

공식적인 사인은 콜레라 감염이었다. 당시 러시아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차이콥스키는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셨고 죽기 직전 ‘쌀뜨물 같은’ 설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에 수만 명의 추모객이 모였는데 이들에 대한 아무런 통제가 없었다는 게 이유다. 심지어 추모객들이 그의 시신에 입맞춤을 하는 것도 허용됐다고 한다.

그러자 이내 자살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사망하기 9일 전인 10월 28일, 차이콥스키는 일생의 대작인 교향곡 ‘비창’을 초연(初演)했다. 그러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어둡고 절망적인 이 곡 4악장에 단원과 관객들은 의아해했다.

차이콥스키가 이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심지어 비창의 4악장이 그의 자살을 암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얼마 후 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증언에 따르면 차이콥스키는 당시 러시아의 권세가였던 스텐보크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였는데 이것이 당국에 발각됐다. 차이콥스키의 학교 동창이었던 한 고위 관리가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자살하라”고 권유했고 그가 이를 따라 독극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이 기막힌 스토리를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88년 포즈난스키라는 러시아 학자가 이 ‘강요된 자살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동성애는 비록 불법이었지만 러시아 왕실 등 사회 지도층에서는 공공연하게 있어 왔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로 재판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차이콥스키가 정말 독극물을 마셨다면 그의 병세가 어떻게 나흘이나 지속됐는지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가 ‘비창’의 실패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은 더더욱 근거가 없다.

말년에도 차이콥스키는 창작욕이 왕성했으며 노년 계획도 풍성하게 세워 놓고 있었다. 사망 직전 그를 만난 지인들은 “차이콥스키는 항상 남미나 호주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진짜 사인은 무엇일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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