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행복은…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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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지음·서은국 외 옮김/374쪽·1만4900원·김영사

“당신은 빅토르와 함께 가야 해요. … 당신은 그를 유지시켜 주는 존재잖아요. 당신이 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아마 후회할 거예요. 물론 오늘은 후회하지 않겠죠. … 하지만 곧, 그리고 남은 인생 동안 영영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이 극적으로 재회한 옛 애인 일리자(잉그리드 버그먼)와 헤어지는 마지막 대목은 잊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일리자는 사랑하는 릭과 머물 것인지, 남편과 떠날 것인지를 갈등하다 릭의 설득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일리자가 카사블랑카에 머물렀더라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했을 것이며 물론 오늘은 아니었을지라도 곧, 그리고 남은 인생 동안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예측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지 않은 일보다 저질러버린 일에 대해, 약간 짜증나는 경험보다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선택이 자유롭기보다 어쩔 수 없을 상황일 때, 심리적 면역 체계를 발동시켜 긍정적 관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질병에 대항해 몸을 지키는 면역체계처럼, 심리적 면역체계는 불행에 대항해 마음을 보호한다. 문제는 이 같은 뇌의 작용을 우리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지만….

언뜻 행복을 향한 심리지침서 같지만, 이 책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정반대로 이 책은 우리가 왜 기대만큼 행복해지지 못하는지를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행복보다 ‘인간의 뇌가 저지르는 실수’가 이 책의 주제라고 해야 더 맞다. 가볍진 않지만, 심리학 교수가 되기 전 공상과학 소설가였던 저자의 재치 있는 글 솜씨 덕분에 이따금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배가 인생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선장이 되어 배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가도록 조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조종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단언한다. 배의 결함이나 선장의 무능 탓이 아니라 “전망의 안경을 통해 보는 미래와 실제 미래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속임수를 쓰는 마법사”다. 눈동자의 시신경이 붙어 있는 곳에는 이미지를 입력할 수 없는 ‘맹점’이 있지만 뇌는 맹점 주변의 정보를 토대로 맹점에 무엇이 보일지를 추측해 빈 장면을 채워 넣는다. 그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도 종종 마음에 있는 맹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틀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파티에서 ‘왕따’를 당해가면서 “첫아이가 갑자기 죽는다면 2년쯤 지난 뒤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가?”를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 결과 단 한 사람도 2년간 가슴이 찢어지는 이미지 외에 다른 것을 상상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비극을 겪은 이후 2년간 다른 사건들도 경험한다. 미래를 상상할 때 뇌는 아주 많은 요소를 빠뜨리지만, 그 놓친 요소들이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거짓말쟁이 뇌를 데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가급적 상상을 덜 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한다. 미래 경험을 예측할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상상보다 같은 경험을 먼저 해본 다른 이의 실제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을 독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즈음이면, 행복의 설계 자체가 불가능한 바에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일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서문에 미리 경고해 뒀다.

“미래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마라. 우리의 자식들처럼, 우리가 낳은 시간의 후손들도 우리의 수고를 마냥 고마워하지는 않는다.” 원제 ‘Stumbling on Happiness’(2006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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