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다… 우린 이제 ‘할리우드’로 간다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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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메리칸 필름마켓’에서 영화 ‘디 워(D-WAR)’의 완성본이 미국 배급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처음 공개됐다. ‘디워’는 심형래 감독이 5년 전부터 제작한 영화로 여의주를 품고 태어난 조선시대의 한 여성이 미국에서 환생하자 나쁜 이무기들이 그를 찾아나서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대혈투가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쇼박스는 “메이저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 디즈니 패러마운트 영화사 등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했고 바이어들은 ‘몇몇 장면은 할리우드를 뛰어넘는다’ ‘소재가 특이하다’는 평가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

이 영화의 제작비는 700억 원으로 역대 아시아 영화 중 최대 규모. 투자와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은 한국인들이 했지만 배우와 스태프는 모두 미국인으로 100% 영어 대사다. 당초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었으며 미국에서 먼저 개봉하는 것이 목표.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CG 완성도가 세계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심 감독의 전작 ‘용가리’의 사례를 들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다. 성공의 관건은 ‘이야기’가 되느냐에 달렸다.》

충무로는 지금 ‘아메리칸 드림’을 꾸고 있다. 1일 ‘괴물’의 리메이크 판권이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인 유니버설픽처스에 팔린 것처럼 미국이 우리의 이야기를 사 가거나 만든 영화를 미국에서 개봉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요즘 추세는 기획 단계부터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영어로 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예술 영화에서 대작 영어 영화로-LJ필름 미국 진출기

“제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제작자입니다.”(LJ필름 이승재 대표)

이 대표가 미국 유명 제작자들의 마음을 돌렸던 한마디다. 여태까지 미국에서 최대 수입(250만 달러)을 올린 한국 영화는 ‘봄 여름…’이다. 작지만 강한 예술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것이 결국 이 대표가 미국에 진출하는 토대가 된 것.

그는 고종의 손자인 이구와 그와 결혼했던 미국 여성 줄리아의 얘기를 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6년 전부터 추진했다. 1990년대 후반 TV 다큐멘터리를 본 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그는 줄리아 여사를 한국으로 초대해 집을 얻어 주고 6개월간 매일 인터뷰를 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1년의 반을 미국에서 지내며 제작사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미국을 하도 드나들어 한 항공사에 ‘밀리언(백만) 마일리지’를 보유했을 정도.

‘브로크백 마운틴’의 제작사인 포커스 피처스 제임스 섀머스 대표에게 자료를 보냈다. “아이템은 흥미롭지만 만들 생각은 없다. 뉴욕에 오면 차나 한잔 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작년 10월 뉴욕, 섀머스 대표는 대뜸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이 대표는 즉각 대답할 수 있었다. 10분 예정의 면담이 1시간이 되고 ‘오케이’ 답변이 나왔다. 치밀한 준비가 주효한 것.

그러나 고생은 그때부터.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시행착오가 되풀이됐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지불한 변호사 비용만 3500만 원이지만 이건 ‘새 발의 피’다. 미국의 유명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기로 했고 남녀 주인공은 한미 양국의 톱클래스 배우로 정한다. 영어가 되는 한국 남자 배우 캐스팅이 당면 과제. 촬영은 내년 8월 시작된다.

○ 저예산 영화에서 1000억 원대 프로젝트까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도 1년 가까이 미국에 머물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직접 쓰는 시나리오가 마무리 단계이며 미국 측 파트너를 찾는 중. 내년에 촬영에 들어간다. 강 감독이 이사로 있는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 초대형 SF 블록버스터로 미국 배우가 출연하고 영어 대사로 된 영화”라며 “제작비가 1000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LJ필름은 ‘줄리아’ 외에도 고종의 궁중 무희로 프랑스 공사와 사랑에 빠져 파리로 갔다 다시 돌아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조선말 여성 ‘리심’의 얘기를 미국과 합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제작하는 ‘웨스트 32번가’(가제)도 대사의 80% 이상이 영어. 감독(마이클 강)과 배우(존 조) 등 대부분의 인력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제작비 25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다. CJ는 이 영화를 미국 진출을 위한 ‘테스트 상품’으로 보고 내년 상반기 미국과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

나우필름은 미국 제작사 ‘복스3’와 공동 제작하고 할리우드의 샛별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가 출연하는 ‘네버 포에버’를 내년 상반기에 개봉한다. 이 외에도 충무로의 미국 진출 프로젝트는 줄줄이 이어진다.

이승재 대표는 “100편 제작 시대니 1000만 영화니 하지만 시장 사이즈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 해외 진출은 ‘살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미국 진출 성공의 세 가지 요건은 △100% 영어 대사 △양쪽에서 다 통하는 ‘크로스 컬처(cross-culture)’ 아이템 △제작에 강하고 배급력이 있는 미국 측 파트너다. 미국에서는 자막이 있는 영화는 무조건 예술영화로 간주돼 상업적 성공이 힘들다. 크로스 컬처 아이템은 결혼 가족 등 인류 보편의 소재나 역사 속에서 서사시적인 요소를 갖춘 이야기들.

영화진흥위원회 박덕호 국제진흥팀장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리안 등 중국 감독들도 실패를 거듭했고 최소 10년 정도의 노력이 있었다”며 “두드리고 두드려 한참 깨져야 성공할 수 있고 지금은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2004, 2005년 한국영화 권역별 수출 현황
권역2004년2005년
수출액(단위: 달러)점유율수출액(단위: 달러)점유율
아시아 45,327,50077.8%66,143,68687.0%
북미2,900,0005.0%2,014,5002.7%
남미141,5000.2%235,6000.3%
유럽 8,245,25014.1%7,315,9709.6%
오세아니아152,8500.3%147,8300.2%
아프리카00.0%35,3200.0%
기타1,517,5002.6%101,6740.1%
58,284,600 75,994,580

■ 할리우드서 손짓 국내배우는

전지현 정우성 임수정…

배우 전지현이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연을 맡을 전망이다.

전지현의 소속사 IHQ에 따르면 전지현은 ‘와호장룡’의 프로듀서였던 빌 쿵이 만드는 액션 영화 ‘블러드’(가제)에서 흡혈귀를 처치하는 여주인공 역을 맡을 예정으로 계약을 앞두고 있다.

블러드는 미국의 유명 제작사가 만들고 프랑스의 3대 메이저 투자 배급사 중 하나인 ‘파테’가 투자에 참여하는 영화. 감독은 홍콩영화 ‘백발마녀전’ ‘무인 곽원갑’, 할리우드에서 ‘13일의 금요일 11-프레디 대 제이슨’을 감독했던 위런타이(로니 우)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실사로 제작하는 작품으로 내년에 촬영에 들어간다.

IHQ 박이범 이사는 “전지현의 영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100% 영어 대사를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IHQ는 소속 배우들의 미국 진출을 위해 올해 IHQ USA를 설립했으며 배우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고 미국 제작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준비도 해 왔다. 소속 배우 중 전지현 외에도 정우성 임수정의 할리우드행이 거론되고 있다. 정우성은 ‘무사’로 ‘동양의 키아누 리브스’라 불리며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임수정은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미국에서 개봉됐고 미국에서도 지명도가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한류 스타 장동건 이병헌의 소속사도 각각 “미국에서 온 시나리오들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마음을 결정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이사는 “영어 구사 능력과 현지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얼마나 ‘시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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