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0년 美딘 장군 북한군에 체포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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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간 내내 북한군의 포로였던 미국 장군이 있다.

미 보병 제24사단장이었던 윌리엄 딘. 그는 포로였던 사실을 평생 부끄럽게 여겼지만 미국은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여겼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미 사단장이었다. 임무는 대전 지구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 미군의 증원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군 T-34탱크의 공세를 간신히 견뎌 내다 결국 ‘대전 철수’를 결정한 날은 1950년 7월 20일. 한국 정부는 이미 부산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는 부상병을 어깨에 메고 퇴각했다. 그의 지프에는 중상을 입은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는 부상병에게 줄 물을 구하러 험한 산비탈을 내려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했다.

그렇게 실종된 그는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8월 25일 전북 진안에서 북한군에 체포됐다.

포로 생활 중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치지 않는 설사였다. 그는 훗날 “하루에 변소를 36번이나 간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심문도 그를 힘들게 했다.

“당신이 딘 장군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북한군)

“구태여 나는 그것을 증명하고 싶지 않소.”(딘 장군)

“왜 미국인들이 이곳(한반도)에 왔소?”(북한군)

“남한 사람들이 국가 안전을 지키고 북 침략자를 방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요.”(딘 장군)

그에게는 산책이나 일광욕도 허용되지 않았다.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볼일 보러 갈 때뿐이었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953년 9월 전쟁포로 교환 제1호로 풀려난 그는 포로 기간을 ‘주검으로서의 3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기나긴 세월을 앉아서만 사는 경우,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가 명예훈장을 수여할 만큼 그는 미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나무로 만든 훈장도 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왜였을까?

“나는 전투 중에 몇 번씩이나 철수를 했고, 빼앗겨서는 안 될 땅을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자랑스럽지 못한 사실이 ‘영웅적 전투였다’는 환상 속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을 아는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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