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프리다 칼로,21세 연상 디에고와 결혼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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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보기 드문 품위를 지녔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눈에는 기묘한 불길이 타오르고 가슴은 봉긋 솟아오르기 시작해 아이 같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었다.”

벽화주의 운동의 세계적인 거장인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 1923년 멕시코시티 국립 예비학교에서 벽화작업을 하던 서른일곱 살의 리베라는 우연히 마주친 16세 소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훗날 멕시코 미술계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다.

이들은 6년 뒤인 1929년 8월 21일 결혼했다. 당시 22세이던 칼로는 21년 연상인 리베라의 세 번째 아내였다.

리베라의 지독한 여성편력 탓에 두 사람은 별거, 이혼, 재결합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들은 부부이자 미술 동료로 갈라설 수 없는 사이였다. 칼로는 자신의 내면에 담긴 욕망과 좌절의 풍경을 그렸고, 리베라는 멕시코 농민 등 민중을 소재로 한 역사적 풍경을 벽화로 표현했다. 칼로는 자화상 속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정도였다.

이런 칼로의 47년 인생은 스러져가는 육체와의 싸움이었다.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가 불구가 됐고, 18세 때인 1925년에는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을 심하게 다쳐 30여 차례나 외과수술을 받아야 했다.

칼로가 이 참담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그림이다. 그는 평생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어머니의 출산 장면을 담은 ‘나의 탄생’을 비롯해 교통사고, 유산, 몸을 쇠로 고정한 흉측한 자신의 몸 등 자화상이 많았다.

칼로는 “살아오며 나 혼자일 때가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이기 때문”이라고 자화상을 많이 그린 이유를 말했다.

칼로가 양성애자이자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긴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멕시코 정부는 1984년 칼로의 작품을 ‘국보’로 지정했다.

이런 칼로의 모습에는 서른두 해를 뜨겁게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1934∼1965)이 겹쳐진다.

전혜린은 자신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78)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누구나 자기의 쥐덫 속에 살고 있다. 개인의 쥐덫과 인류의 운명이라는 역사성, 시간성의 쥐덫이 놓여 있다. … 죽음을 내포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자신의 내부에 파고드는 것, 내적 관조에 의해 어떤 체념적인 긍정을 얻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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