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神道 결합한 日주자학 시조 분석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임진왜란이 끝나고 20년 뒤 일본에서 태어난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1618∼1682·사진)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인식은 퇴계 이황을 사숙한 일본인 주자학자라는 정도다. 그러나 야마자키는 정통주자학자인 동시에 오늘날 ‘일본주의’라고 불리는 독특한 일본사상체계의 원류를 살필 수 있는 모순적인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야마자키는 주자를 존경해 그 호인 회암(晦庵·캄캄한 암자)을 따라 자신의 호를 암재(闇齋·캄캄한 방)로 지었다. 그는 퇴계에 대해서도 ‘(주자보다) 수백 년 뒤에 태어났음에도 백록동서원에서 직접 주자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공자가 대장이 되고 맹자가 부대장이 되어 군대를 끌고 일본에 쳐들어온다면 무기를 들고 싸워 공자와 맹자를 포로로 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곧 공맹의 도”라고 말할 만큼 주체적이었다. 일본의 전통신앙인 신도(神道)에 심취해 신도와 유교가 하나라는 신유겸학(神儒兼學)을 주창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심신(心神)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조상신과 성현에 대한 제사 이외의 제사를 이단시한 주자학적 전통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6000여 명의 제자를 키워냈으며 일본주자학의 정통으로 대접받는 기몽(崎門)학파의 창시자다. 기몽학파는 일본문화의 부흥을 주장한 국학 창시자 중 하나인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1776∼1843)를 배출했다.

성균관대출판부의 유학사상총서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된 ‘야마자키 안사이-일본 주자학의 원형’은 이 같은 야마자키 사상의 모순성을 접할 기회를 준다.

저자 다지리 유이치로(田尻祐一郞) 도카이대 교수는 이런 모순성을 인간의 자기중심성 극복을 위해 주자학과 신도의 통일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퇴계의 아류로 치부됐던 야마자키 사상의 독자성을 읽어내고 이와 달리 교조화의 길을 걸은 조선 주자학의 문제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