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29년 英과학자 스미스슨 사망

  • 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나의 전 재산을 조카에게 준다. 단 조카가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었을 때…지식의 증대와 보급을 목적으로 한 스미스소니언협회를 워싱턴에 설립하기 위하여 전 재산을 미국으로 보낸다.”

영국인 제임스 스미스슨의 유언이다. 그는 1829년 6월 27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사망했다. 유산을 받은 조카가 6년 만인 1835년 자식도,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숨져 50만여 달러의 거액은 고스란히 미국의 몫이 됐다.

스미스슨은 누구인가. 미국에 어떤 연고도 없었다. 미국을 다녀간 적조차 없었다. 미국의 어느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그는 귀족의 사생아였다. 왕가 혈통인 어머니 엘리자베스 메이시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그를 낳았다. 36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의 성인 메이시로 불려야 했다. 열 살에 영국으로 왔으나 귀족 대접은커녕 상류 사회의 배척을 받았다. 생부는 친자 확인조차 거부했다. 화학자요 광물학자로서 각고의 노력 끝에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원망이 싹텄던 걸까. “나의 이름은 귀족의 칭호가 없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상당한 재산을 남기고 숨지자 비로소 아버지의 성인 스미스슨을 썼다.

미국 의회는 논란을 벌였다. 외국인의 선물을 놓고 토의하는 것조차 미국의 품위를 손상하는 일이라며 단호히 거절하자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러길 3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단안을 내려 선물을 받아들였다.

이번엔 이 돈을 어떻게 쓸지를 놓고 논쟁했다. ‘지식의 증대와 보급’을 위한 방법으로 자연사박물관, 사범학교, 도서관 등 여러 안이 8년여를 맞섰다. 마침내 1846년 의회에서 스미스소니언협회 설립을 가결했다. 협회를 운영할 평의회는 부통령, 대법원장, 상하원 의원 6명, 저명인사 9명으로 구성했다. 이 협회는 “산소 속에서 인(燐)을 태울 수 있으면 누구든 과학자”(조지프 헨리 초대 스미스소니언협회장)라고 했을 만큼 보잘것없던 미국의 과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모태가 됐다. 그리고 ‘미국의 성(城)’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 스미스소니언을 키워 냈다.

박물관 19개, 연구센터 9개, 소장 유물 1억3600만여 점, 한 해 관람객 2400만 명, 직원 6300명. ‘스미스슨’은 이렇게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누구에게든 무료로 개방되는 스미스소니언, 그곳에서 미국의 청소년들은 마음껏 미래를 꿈꾼다. 우린 언제쯤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성’을 선물할 수 있을까. 내로라하는 그룹 회장들이 내놓겠다는 8000억 원, 1조 원을 이 땅의 ‘스미스슨 유산’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