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프로듀서 정재일 “월드컵때 민중가요… 생뚱맞나요”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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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프로듀서 정재일 씨 ‘월드컵 아니면 죽음’ 분위기 속에서 70, 80년대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을 냈다.
24세 프로듀서 정재일 씨 ‘월드컵 아니면 죽음’ 분위기 속에서 70, 80년대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을 냈다.
▼정 正▼

“나는 1982년생. 이제 스물네 살. 26년 전 나는 광주에 있지도 않았고 화염병을 만져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잠자고 있던 민중가요를 다시 끄집어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 음악들에 새로운 옷을 입히면 어떨까. 질문에 대한 내 스스로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2006년 6월. 지극히 ‘눈치 없는’ 음반 한 장이 발매됐다. 1970, 80년대 민중가요를 리메이크한 옴니버스 앨범 ‘아가미’. ‘월드컵 아니면 죽음’과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 음반은 제목도, 음악도 마치 소개팅에 눈치 없이 나온 ‘폭탄’과도 같다.

하지만 이 음반을 프로듀싱한 베이시스트 정재일(24)은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은 숨 쉬는 것”이라며 앨범 작업에 대한 소회를 장문의 e메일로 보내왔다. 흔해빠진 사랑 노래, 획일화된 섹시 여가수들… 갈수록 혼탁해지는 대중음악계에서 그는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의 ‘길거리 음악’을 만져보고 싶었단다. 결국 작업 6개월 만인 12일 그는 ‘아가미’를 대중음악계에 던졌다.

“2004년 김민기 선생님의 앨범 ‘공장의 불빛’을 프로듀싱했다. 그때 선생님이 ‘과감한 실험정신이 살아있는 새파란 너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민중가요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요로 재탄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하림 연주/한대수 노래)

▼반 反▼

“의욕만 갖고 되는 건 없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민중가요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고 불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한 뮤지션들에서도 편견은 쉽게 나타났다. 음악 작업보다 섭외에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의 앨범 콘셉트는 ‘새로움’이었다. TV 다큐멘터리나 1970년대 민중가요 책 등을 뒤져 찾은 원곡들은 대부분 군가 풍의 단조, 포크송. 이를 다양한 장르로 해석하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세대, 장르를 초월한 12팀의 뮤지션들이 고스란히 해결해 줬다.

클래식 기타 연주로 단촐하게 편곡된 ‘불행아’는 ‘패닉’의 이적이, 레게로 흥겹게 재탄생된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은 ‘윈디시티’가 각각 불렀으며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월드뮤직 스타일로 편곡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하림과 한대수가 각각 연주와 노래를 맡았다. 몸과 마음이 비대해진 386세대들, ‘투쟁’을 국사책으로만 접했던 신세대들 모두에게 24세 청년 뮤지션이 만든 ‘아가미’는 마치 ‘웰 메이드 팝 앨범’과도 같다.

“세네갈 타악기로 연주한 ‘어머니’나 그런지 록 풍의 ‘영산강’… 오히려 내가 민중가요 세대가 아니라서 더 과감하게 작업했는지도 모른다. 이적 씨부터 한대수 선생님까지 예술에서 의견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세대차이는 없다는 것도 느꼈다.”

▼합 合▼

“지금의 대중음악은 극단적으로 하향평준화됐다.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만도 못한 것처럼 취급한다. 난 비록 386세대는 아니지만 이번 음반 작업을 통해 민중가요는 그 시절 많은 이들에게 숨통이자 꿈이었다고 느꼈다.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그는 요즘 세계사 책을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아가미’ 앨범 작업을 하며 민중가요를 낳은 한국 근현대사가 궁금해졌단다.

최근 안치환의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이나 노래패 ‘새벽’의 컴백 콘서트처럼 ‘민중가요’가 대중가요계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자 그는 “그런가?”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유행은 관심이 없단다.

1999년 17세의 나이로 정원영, 한상원, 이적 등과 함께 밴드 ‘긱스’를 결성해 활동했고, ‘패닉’, 린 등의 가수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영화음악 작업을 했던 그. 지금까지의 삶이 천재 소년 뮤지션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의식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남긴 채 그는 12일 홀연히 여행을 떠났다. 싱싱한 ‘아가미’ 하나 던져둔 채.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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