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22>하늘 오르는 길

  • 입력 2006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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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고자 하는, 특히 벽을 오르려는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반드시 벽에 그들이 찾는 무엇이 있거나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옆에는 치열하게 같이 고민하고 같은 길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생의 마지막을 같이 맞아도 좋은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본문 중에서》

이 책은 1998년 인도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해발 6904m) 북벽에서 사라진 세 젊은이의 성취와 통한이 맞닿는 하늘 밑의 이야기다.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 불리는 이 벽을 오르던 중 정상 100여 m를 남겨 둔 지점에서 신상만(32) 최승철(28) 김형진(25) 세 사람은 인간의 등정을 끝내 거부하는 북벽에서 불꽃처럼 산화하고 만다.

이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도 행복해했을 정도로 의기투합했던 자일 파트너였다. 세 사람은 ‘자살구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북벽의 최난 구간으로 꼽히는 ‘블랙타워’를 직등으로 등반해 세계 최초로 직등 루트를 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들은 해발 6800m 지점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에 진입한 직후 몰려온 구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세 사람은 로프 하나에 함께 묶인 채 1300m를 추락했다. 마(魔)의 블랙타워를 통과한 그들이 왜 추락하게 되었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다.

1998년 9월 28일 오후 4시 15분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어 순간적으로 날씨가 어두워졌고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매달려 있던 벽에 구름 띠가 감겨지는 바람에 베이스캠프의 동료들도 당시 상황을 목격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구름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 스러져 갔다.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눈에 보이는 성과중심 위주의 등정주의(登頂主義)에서 벗어나 좀 더 어려운 등로(登路)를 통한 등정을 추구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상징적인 대상지다. 한국 산악인들은 1993년 첫 도전 이후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악천후와 기량 부족으로 매번 패퇴했다. 헝가리 원정대는 1991년 ‘자살구간’이란 이름을 남기고 돌아갔고 1997년 호주원정대는 “무시무시하다”고 치를 떨며 포기했다. 그러다 마침내 한국의 젊은이 세 사람이 북벽 블랙타워를 직등하며 명실상부한 북벽 직등 루트를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지 살아서 귀환하지 못했을 뿐이다.

촬영과 기록 담당으로 함께 등반에 참가했던 산악사진가 손재식이 펴낸 이 책 곳곳엔 생사가 나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층 굳건해지는 산사나이들의 우정이 바위처럼 숨쉰다. 탁월한 등반 실력과 확고한 등반 철학을 두루 갖춘 젊은 등반가로서, 자신들의 삶을 참답게 가꿀 줄 아는 생활인으로서, 높이 오르기보다 어떻게 오르는가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세 명의 젊은 알피니스트. “등반은 깊이 빠져들수록 죽음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 같다”고 읊조렸던 이들은 피안의 저편에서도 정상을 향한 구간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거벽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등반 과정’에 의미를 부여했던 이들의 불꽃같은 삶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산정의 아름다움도, 위대한 공간 속의 자유도, 다시 발견한 자연과의 친밀함도, 산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 없이는 무미건조한 것”이라고 말한 프랑스 등산가 가스통 레뷔파의 금언을 차분히 곱씹어 본다.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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