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고은의 안성 대림동산
안성에 작가의 방을 차린 지 23년째다. 서가에 책을 꽂다 꽂다 못해 방바닥부터 쌓아 올린 책의 탑은 쓰러질 듯하면서도 용케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이젠 책이 너무 많아져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전 내내 책만 찾을 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은 수전 손택의 저서들을 찾아 읽는다고 했다.
책상은 셋. 하나는 잡무용 책상, 하나는 ‘그냥 시’를 쓰는 책상, 또 하나는 ‘만인보 책상’이다. 책상마다 돋보기를 올려놓았다. 이 책상 저 책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다. 볼펜으로 쓰다가 고칠 게 있으면 죽죽 그어 고친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시가 달려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정신없이 바쁘게 쓴다”고 했다.
책상에도 잔뜩 쌓인 책들. 사이사이에 원고지가 끼여 있다. 흔히 쓰이는 200자 원고지가 아니라 600자 원고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영남대 교수 시절이던 어느 날 원고지를 실어 와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엄청 쌓여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다 써버리겠다”는 말 속에 뜨거운 창작열이 담겼다.
가장 자주 꺼내 보는 책은 백과사전이란다. 백과사전을 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목욕을 하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정보의 세례’를 받는 셈이다.
■ 소설가 김훈의 일산 오피스텔
그가 공개한 작가의 방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오피스텔 13층.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이다. 간이침대, 화분, 서재… 살림이 제법 많다.
책상 위 미니어처 자전거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소설가라고 자신을 밝히기가 쑥스러운지, 그는 늘 약력에다 ‘1948년 서울 출생, 자전거 레이서’라고 적는다. 본격적으로 소설 작업에 몰두하기 전,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냈던 터다. 쇠로 만든, “쥐가 타면 딱 좋을”(김훈 씨 표현) 이 작은 자전거는 반 년 전 술집에서 만났다. 퍽 마음에 들어 주인에게 갖고 가겠다고 했다. “노획물인 셈이지. 그놈이 작아도 기능은 다 갖추고 있소. 페달, 체인, 기어…. 살아 있는 자전거요.”
특이한 소품이 몇 더 있다. 벽에 걸어 놓은 등산용 피켈. 좀 더 젊었을 때 빙벽을 탔단다. “사라진 젊은날의 상징”이라나. 그리고 창가에 망원경이 있다. 그걸로 종종 호수공원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큰돈을 들여 장만한 건데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술 잔금까지 보인다고 자랑한다.
“소설은 시정잡배가 쓰는 것”이라고 그는 낮춰 말하는데, 그 말은 ‘소설은 부대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는, 사람들의 움직이는 입술에서 얘깃거리를 찾아내는지도 모른다.
■ 시인 김용택의 섬진강 고향집
최근 나온 책 ‘작가의 방’(박래부 지음·서해문집)에는 이 고향집의 풍경이 잘 묘사돼 있다. 가로 3m, 세로 5m쯤 돼 보이는 작은 방은 방문과 창문 빼놓고는 모두 책이 꽂힌 서가다. 빽빽하게 들어찬 헌책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의 방은 알(卵) 같다. 방에서 풍기는 느낌이 그렇거니와 실제로도 그 방은 그에게는 문학적 원형의 공간이다. 스물한 살에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10여 년 뒤 등단하기까지 그는 이 방에서 독서를 하면서 홀로 문학수업을 했다. 문학전집과 잡지 영인본, 논어…. 사방도 모자라 창고까지 차지한 3000여 권의 책이 그의 문학의 든든한 거름이 됐다. 여기에다 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지는 섬진강이 ‘김용택만이 쓸 수 있는 시’를 만들어 냈다.
■ 소설가 신경숙의 평창동 자택
‘숲 속의 동물들’ ‘식물의 사생활’ 같은 자연과학 서적, 오페라 서적, 역사 관련 서적, 사진집 등 작가의 다양한 취미를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더불어 꽂혀 있다. 그 책들은 소설을 쓰는 데도 필요하다.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란다.
책상 맞은편 책꽂이 앞에는 조각상이 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인상이다. 신 씨가 ‘데려온’ 그 여성은 책상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다. 신 씨가 글을 쓸 때 그 여성은 신 씨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작가에게는 은근한 채찍처럼 혹은 다정한 벗처럼 느껴질 법하다. 작가의 방은 이제 ‘외딴 방’은 아니지만, ‘외딴 방’이 전해줬던 감수성은 언제나 따뜻하게 서려 있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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