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서울국제도서전]동네서점이 쑥쑥 크는 대~한민국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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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 다닐 때 돈이 너무 없어서 이곳에서 책을 몇 권 훔쳐갔었는데,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이렇게 갚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제가 번 떳떳한 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용산구 한강중학교 3학년 남채린 양은 최근 ‘우리 동네 서점신문’을 만들기 위해 동네 서점들을 취재하다 영화같이 따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4년 어느 날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양지문고 안으로 어떤 여자가 들어오더니 카운터에 봉투만 남겨 두고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주인인 홍성민 씨가 황급히 뒤따라 나가 봤지만 여자는 사라졌고, 봉투 안에는 돈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 동네 서점들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동네 서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동네의 소규모 서점들을 취재해서 만든 신문들의 경연장인 ‘우리 동네 서점신문 콘테스트’ 수상작이 2∼7일 2006 서울국제도서전에 전시된다. 이번 콘테스트에는 전국의 100평 미만 소규모 서점들을 취재해서 만든 신문 74점이 출품됐다.

최우수상에는 20년이 넘도록 학생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 온 경기 남양주시 ‘재구서적’을 소개한 남양주시 동화고 신문반 학생들의 ‘동화신문’이 뽑혔다. 이 신문은 대형서점과 작은 서점의 장단점을 취재해 비교해 놓은 표, 동네서점에서 벌어진 황당하고도 가슴 뭉클한 사건 등을 아기자기하게 담았다.

최수연(동화고 2년) 양은 “이 서점은 1980년에 문구로 시작했다 1993년 주인 아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재구서적’으로 재단장했다고 한다”며 “그런데 그 아들이 4월에 우리 학교 교생선생님으로 오셔서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다.

이렇듯 수십 년간 한 동네에서 토박이로 남아 있는 동네서점은 여느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인간미가 가득한 공간이다. 동네 서점들 가운데는 고객들에게 커피와 녹차를 제공하고, 주문 도서가 입고되면 일일이 전화를 해 주는 세심함을 보이는 곳도 많다. 하지만 오늘날 학생들의 눈에 비친 동네 서점의 현실은 쓸쓸하기만 하다.

“올해로 창립 17주년을 맞은 ‘연궁서가’는 주인 아주머니 혼자서 지켜왔습니다. 라디오, 에어컨, 강아지 초롱이는 단골 손님들을 맞아 준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얘네들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이 되어도 에어컨 바람을 쐬러 오는 손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김연희·연북중 3학년·‘연궁서가 일보’)

지역문화의 토대가 되는 소형 서점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설’란도 흥미롭다.

“세월과 함께 한 서점, 여유와 믿음이 있는 서점, 책 값의 몇 %를 할인해 주는 것보다 난 이런 서점들이 있기를 바란다.”(김면황·동화고·‘동화신문’)

“울고 있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면 눈물을 그치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이 울 때 작은 서점에서 마음을 달랠 수 있었으면 한다.”(이동원 외 3명·진접중·‘지식의 샘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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