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시대 질서에 맞선 아웃사이더 13인… 한국사의 천재들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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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천재들/이덕일 신정일 김병기 지음/349쪽·1만4000원·생각의나무

“기대승이 제자들과 산천을 노니는데 경치가 빼어난 곳에 이르자 한 제자가 물었다. ‘이 세상에서 인품이 이 경치에 비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에 기대승은 ‘정철이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송강행록’)

조선조 불세출의 문인이자 최악의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 스승 기대승은 그의 비범함에 가린 인간의 흠을 보지 못하였으나 정적들은 그를 ‘동인 백정(白丁)’ ‘간철(姦澈)’ ‘독철(毒澈)’이라 불렀다.

그는 양면적인 인물이었다. 한문학과 한글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불후의 걸작을 남긴 시인이었으나 16세기 후반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행적으로 길이 오점을 남겼다.

이 책은 한국사의 ‘천재 열전’이다. 타고난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의 앞길을 먼저 갈파하고 ‘시대의 상식’을 뛰어넘고자 했던 천재 13인이 등장한다. 이덕일 신정일 김병기. 저술로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재야사학자 3명이 한국사의 인물에 대한 ‘편식’을 교정하고자 뜻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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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유학 8년 만에 과거에 붙었으나 고국인 신라에서는 골품제의 한계로 뜻을 펴지 못한 최치원, 관노 출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을 조선에 선사했던 장영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무대를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로 확장했던 유득공…. 이들은 단연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였다.

자신의 모든 천재적 재능을 독립운동 외길에 바쳐 이국땅에서 운명을 다한 이상설, 천주교를 버리라는 압력에 맞서 단식 끝에 죽음에 이르렀던 이벽, 망국의 책임을 홀로 걸머진 채 자결로 생을 마쳤던 매천 황현. 이들은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천재였다.

천재들의 삶에 드리워진 명암도 낱낱이 드러난다.

평생에 걸쳐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정철. 그는 다혈질이었고 직선적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입 밖에 내야 했고 반대파를 공격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동서붕당의 한가운데 서서 30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 시대를 열었고,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의 ‘행동대장’을 자처하며 1000명이 넘는 반대파를 숙청했다. ‘조선실록’은 그가 술에 취해 옥사를 다스리면서 증거를 조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학적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쟁의 진흙탕 속에서도 후세에 길이 남을 절창을 쏟아 냈으니, 그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국문학사상 최고의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국문시가에서 그가 이루어 낸 빛나는 업적을 생각하면 정치인으로서 정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피에 전 그의 정치 역정을 생각하면 시인으로서 송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일생에 8000여 편의 시를 지어 ‘붓을 달려 시를 쓴다’는 말을 들었던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 역시 선비의 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랫동안 한직 말단을 전전하며 시대를 탓하던 그는 무신정권의 등장으로 입신양명의 기회를 거머쥐었다. 최씨 정권에 의해 발탁된 ‘어용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재(文才)는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쓰였으니 그의 서사시 ‘동명왕편’은 고려인의 자부심을 만대에 전한 시문의 백미로 꼽힌다.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는 천재 이가환. 그는 자신을 천주교인으로 몰아가는 노론의 탄핵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교우를 해침으로써 자기변명의 계책을 삼았으나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정철은 어떠했던가. 그의 만년은 스산해서 호구조차 어려웠고 빈곤과 울분 속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자 사헌부에서는 “그는 성질이 강퍅하고 시기심이 많아 사갈(蛇蝎)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고 해치는 것을 일삼았다”고 아뢰었다. 선조는 이리 답한다.

“정철을 말하면 입이 더러워질까 염려된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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