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oy’ 거리의 춤꾼, 우상이 되다

  • 입력 200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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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만 해도 ‘바닥 쓸려고 태어났느냐’며 비웃는 사람도 많았는데….”

13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비보잉 경연대회 ‘UK 비보이 챔피언십’ 예선전에 심사위원으로 초빙돼 출국하는 15년차 비보이 이우성(30) 씨. 쏟아지는 공연과 행사 초청으로 국내외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이너리티’로 취급받던 비보이 문화가 주류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비보이’의 춤실력 동영상 보기]

비보이 문화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곳은 방송계와 영화계. 케이블방송 Mnet은 자체 제작 드라마 ‘브레이크’를 방영하고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국내 비보이 1세대 ‘고릴라’ 팀의 리더 전나마 씨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드라마에는 전문 비보이 그룹인 ‘고릴라’ ‘T.I.P’ 등이 출연한다.

드라마 ‘궁’을 제작한 에이트픽스도 그룹 ‘동방신기’를 주인공 후보로 올려놓고 비보이 만화 ‘힙합’(원작 김수용)을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다. 진인사필름도 비보이의 삶을 다룬 영화 ‘브레이커스’(가제)를 기획 중이다. 제작은 영화 ‘친구’ ‘태풍’의 곽경택 감독이 맡을 예정이다.

KBS SKY스포츠, SBS스포츠 등 케이블 스포츠 채널들은 ‘비보이유닛’ 등의 비보이 배틀을 생중계한다.

음지에 있던 한국 비보이들은 ‘배틀 오브 더 이어’(독일), ‘UK 비보이 챔피언십’(영국), ‘프리스타일 세션’(미국) 등 세계 주요 대회를 연달아 석권하며 주목받게 됐다. 하지만 문화평론가들은 비보이 문화가 주류 대중문화에 진입하게 된 것이 단순히 세계 대회 활약상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몇 가지 동작의 응용만으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비보잉은 신세대들이 추구하는 ‘자율적 개입’ ‘생산의 창조성’과 일치한다. 비보잉과 발레 등을 결합한 비(非)언어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연출하는 문주철 씨는 “몸을 표현 도구로 사용하는 비보잉은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라고 말했다. ‘비보이를…’이 공연되는 서울 홍익대 앞 극장 ‘비보이시어터’ 관객의 20%는 외국인이다.

비보잉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놀이 정서와 어울린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요즘 대중문화의 코드는 폐쇄적인 공연장이 아닌 길거리 공연에서 맛볼 수 있는 ‘광장성’”이라며 “비보이 문화는 기성 문화 제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대중과 직접 호흡했던 우리의 마당놀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2002 독일대회 우승 ‘익스프레션’ 팀

“나도 한번 비보이가 돼 볼까?”

12일 오전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비보잉 팀 ‘익스프레션(Expression·사진)’ 전용연습장. 익스프레션은 2002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해 한국 비보이의 우수성을 알렸다.

“한번 배워 보자”는 기자에게 비보이들은 먼저 ‘패션’을 지적했다.

“힙합 스타일의 통 넓은 청바지는 금물입니다. 다쳐요. 잘 맞는 면바지나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위에는 편한 저지를 입어요. 운동화도 힙합처럼 큰 사이즈는 안 됩니다.”(이호성 팀장)

여기에 니트 비니 모자(일명 ‘베컴 모자’)를 쓰면 비보이 패션 완성. 비보잉을 배우려면 팔다리가 길고 유연한 사람이 유리하지만 힘도 중요하다. 키는 175cm 내외가 다양한 기술을 쓰기에 유리하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석 달 이상 스텝, 팔을 흐느적거리며 휘둘러 공간을 확보하고 몸을 푸는 톱록(Top rock) 등의 기본자세를 익혀야 한다.

“한국에서는 고급 비보잉 기술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죠. 한국 비보이들이 강한 이유예요. 하지만 비보잉이 유행하면서 청소년들이 동영상만 보고 따라하다가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아요. 기본 동작을 익히는 게 중요합니다.”(김준희)

2단계로 프리즈(Freeze)와 플로어록(Floor rock·스텝 동작을 부드럽게 연결)을 배운다. 여기까지는 기본 춤 동작인 ‘스타일 무브’. 이후 나인틴(Nineteen·한 손으로 물구나무서서 회전), 윈드밀(Windmill·어깨를 땅에 대고 다리를 풍차처럼 돌림) 등 난도가 높은 ‘파워 무브’로 옮겨간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 비보이는 3000여 명. 이 중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 수준의 수입이 보장되는 프로 ‘비보잉’ 팀은 6, 7개다. 그러나 프로가 아닌 비보이들도 더는 ‘거리의 배고픈 춤꾼’이 아니다.

“비보이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지하철 역사를 연습장으로 삼는 거요? 이젠 실제와 거리가 먼 얘기예요. 이제는 비보이 춤을 ‘예술’로 보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일동)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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