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말투도 재산 “허락받고 쓰세요”

  • 입력 2006년 5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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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요일이 좋다’ 녹화 현장에서 춤 솜씨를 선보이는 미셸 위. 대중이 열광하는 자신의 이미지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그는 퍼블리시티권을 향유하는 대표적 수혜자다. 사진 제공 SBS
SBS ‘일요일이 좋다’ 녹화 현장에서 춤 솜씨를 선보이는 미셸 위. 대중이 열광하는 자신의 이미지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그는 퍼블리시티권을 향유하는 대표적 수혜자다. 사진 제공 SBS
‘SK텔레콤 오픈 2006’ 출전을 위해 방한한 골프 천재소녀 미셸 위. 그는 8일 SBS 오락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녹화에 참여했다. 출연료 20만 달러(약 2억 원)는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기부했다.

미셸 위의 출연 계약 조건은 공중파를 통해 본방송과 재방송까지만 내보낼 것, 녹화 현장 취재 내용은 당일 저녁 ‘8뉴스’에서만 방송할 것이었다.

따라서 미셸 위가 출연한 ‘일요일이 좋다’를 케이블 또는 인터넷의 다른 채널을 통해 내보내거나 프로그램을 재가공해 방송하려면 별도의 계약이 필요하다. 녹화 현장 취재 화면을 다른 뉴스 프로그램에서 방송해도 안 된다. SBS가 제작했으니 저작권은 SBS에 있지만 그의 모습을 공표할 권한, 즉 ‘퍼블리시티권(權)’은 미셸 위에게 있기 때문이다.

▽말투, 이미지도 허락 없이 쓰면 안 돼=최근 퍼블리시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는 지난달 휴대전화용 야구 게임에 이종범을 포함한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이름을 허락 없이 쓴 게임업체에 이름 사용을 중단하고 선수들에게 모두 29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유명인이라도 이름이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까지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과 박건형은 올해 초 영화 ‘댄서의 순정’ 중 춤추는 장면이 허락 없이 방송국 광고에 사용돼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됐다며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을 상대로 4억6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방송사 측은 “영화 배급사에서 영화를 제공받을 때 프로그램 홍보와 영업 활동을 위해 영상을 쓸 수 있다는 ‘포괄적’ 계약을 해 오해가 있었다”며 “배우들과 합의해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금 2500만 원은 배우들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고 밝혔다.

유명인 특유의 이미지나 말투도 ‘재산’이므로 허락 없이 쓰면 안 된다. 개그맨 정준하는 자신의 얼굴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무단 제작해 사용한 모바일 콘텐츠 제작업체를 상대로 지난해 소송을 제기해 500만 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개그맨 김제동도 자신이 방송 등에서 남긴 유행어들을 묶어 책으로 펴낸 출판사를 상대로 지난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판매금지 결정을 받아 냈다.

▽스타는 영웅이 아니라 상품=연예인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판례가 잇따르자 일부 톱스타는 드라마 출연을 계약하며 달력 쿠션 열쇠고리 브로마이드 컵 등 2차 파생상품에 자신의 모습이나 사인을 이용할 권리에 대해 별도 계약 문구를 요구하고 있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여자 탤런트 A는 미니시리즈에 출연하며 제작사에 퍼블리시티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대가로 회당 4000만 원이 넘는 출연료를 받았고, 남자 탤런트 B는 20회짜리 드라마에 출연하며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대가로 2억 원을 별도로 받았다”며 “한류 열풍 이후 제작사와 연예인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간에 퍼블리시티권을 놓고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는 것이 새로운 추세”라고 전했다.

현재 국회에는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하기 위해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노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는 “스타로 크기까지는 팬들의 기여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개인적으로 스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스타와 팬들이 애써 키워 놓은 이미지에 무임승차해 막대한 이득을 보는 행위는 규제해야 연예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스타는 더는 영웅이 아니다. 정당한 값에 거래되길 원하는 상품일 뿐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퍼블리시티권:

상업적 가치가 있는 유명인의 초상(肖像)이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우리말로는 ‘초상사용권(right of publicity)’이라고 한다. 초상권이나 프라이버시권이 함부로 촬영·공포되지 않을 인격권인 데 비해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으로서 양도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인정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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