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1년 IRA전사 샌즈 옥중단식 사망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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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수도 테헤란 도심에 있는 영국대사관 옆길의 명칭은 ‘보비 샌즈 가(街)’다.

영국에 대항해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운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소속 전사의 이름을 딴 거리다. 당초 이 거리는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 총리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슬람혁명 이후 거리명이 바뀐 것이다.

영국으로선 자국 대사관 옆길에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붙인 이란이 야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교적 압력을 넣고 있지만 이름 바꾸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보비 샌즈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민족으로 일컬어지는 아일랜드, 그것도 1세기 동안 가톨릭계와 신교계로 갈려 피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북아일랜드의 역사 속에 ‘짧고 굵게’ 살다 갔다.

10대 후반 자동차 제작 견습공으로 일하다 신교 측의 총구에 밀려 쫓겨난 소년 샌즈가 선택한 것은 IRA 전사의 길이었다. 4년의 감옥 생활을 했던 샌즈는 1977년 무기소지죄로 다시 체포돼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 그는 자작시를 발표하며 저항을 계속했다.

그 즈음 영국 정부는 IRA 수감자들에게 부여해 왔던 ‘정치범’ 지위를 없애고 일반 형사범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감자들은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며 나체로 담요만 두른 채 생활하는 ‘담요투쟁’(1976년)과 씻기를 거부하고 벽에 배설물을 처바르는 ‘불결투쟁’(1978년)으로 맞섰다. 수감자들은 1980년 1차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영국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다가 이를 번복했다.

IRA는 1981년 3월 1일 2차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교도소 내 IRA 총책이던 샌즈가 단식을 시작하자 다른 수감자들도 뒤를 따랐다. 샌즈는 단식투쟁 중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옥중 출마해 최연소 영국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 정부는 양보를 거부했고, 샌즈 역시 굽히지 않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사절을 보내 단식 중단을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샌즈는 단식 66일 만인 5월 5일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후에도 수감자 9명이 샌즈의 뒤를 따랐다. 파장은 컸다. 아일랜드 전역에서 소요가 벌어졌고, 영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IRA 투쟁전술도 변했다. IRA는 선거 참여 노선을 채택해 신페인당을 굳건한 정치조직으로 성장시켰고 지난해 마침내 무장투쟁 포기를 선언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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