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우 회장 “정부, 언론 편집권까지 개입하면 안돼”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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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간된 3권의 ‘한국 언론 100년사’를 자랑스레 내보이는 서정우 한국언론인연합회장. 서 회장은 “역사가 왜곡되고 실종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막 출간된 3권의 ‘한국 언론 100년사’를 자랑스레 내보이는 서정우 한국언론인연합회장. 서 회장은 “역사가 왜곡되고 실종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언론은 역사의 초고(草稿)를 쓰는 기관입니다. 역사 속에서 언론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자리매김해 왔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언론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지요.”

최근 출간된 ‘한국 언론 100년사’(한국언론문화사) 편찬위원장을 맡았던 서정우(69·연세대 언론영상학부 명예교수) 한국언론인연합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 책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총 3권, 3000쪽 분량의 이 책은 100명의 언론학자와 언론인이 기획과 집필에 참여해 근대 신문의 효시인 한성순보(1883년 창간)부터 유비쿼터스 시대의 미디어까지를 조망했다.

5년의 산고 끝에 탄생한 ‘한국 언론 100년사’는 20년을 감한 ‘겸손한’ 제목과는 달리 3000컷이 넘는 사진과 도표를 곁들여 한국 언론 ‘120년사’를 꼼꼼히 되짚었다.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통신 광고 홍보 학계까지 언론과 관계된 모든 기관의 역사를 망라한 ‘백과사전적 매스미디어사’로서 학계에서는 처음 시도한 작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 최초의 신문 소설, 최초의 아나운서와 같은 이색 기록과 함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대 대통령의 언론 정책에 대한 기술. 저자들은 노무현 정부를 ‘인터넷 뉴미디어가 탄생시킨 최초의 정권’으로 규정했다.

‘특정 신문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시에 오마이뉴스나 청와대 브리핑과 같은 인터넷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위력이 정부의 홍보 정책과 맞물려 교묘하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입니다.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인터넷 시대의 아이러니지요. 정부를 비판하는 칼럼을 쓰거나 발언을 한 뒤 인터넷을 통해 당하는 테러는 70대 노인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방송과 통신을 포함해 언론산업 전반에 걸쳐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언론 개혁 정책이 주요 신문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기술했다.

“신문법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론을 거론하지요. 하지만 대표적 악법인 제5공화국 시절의 언론기본법도 사회적 책임이론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신문법도 정권이 바뀌면 폐기될 악법입니다. 사회적 책임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다양한 정보가 사상의 공개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경쟁 윤리를 확립하는 일을 맡습니다. 어떻게 정부가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규제하고, 경영 정보를 보고 받고, 편집에까지 개입할 수 있습니까. 국제적으로 비난 받을 법입니다.”

서 회장은 “신문법의 위헌 여부를 가릴 결정을 앞두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언론 자유를 어떻게 신장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인지 역사에 물어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도 머지않은 훗날 평가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역사서를 집필하면서 편찬위원들이 정한 주요 집필 방침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역사적 객관성과 정확성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현 정부를 포함해 모든 기관으로부터 자유롭게 집필하기 위해 편찬위원회는 외부 지원 없이 1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용을 사재를 털어 충당했다. 서 회장도 2억 원의 빚을 내 제작비용에 보탰다.

“즐거운 마음으로 갚아 나갈 겁니다. 후속 작업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훌륭한 언론인 30∼50인을 선정해 한 사람당 한 권씩 인물탐구 책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자주독립을 위해,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언론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장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발행인 서재필 박사에 대한 책 한 권도 없는 실정입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다음 달 9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언론 100년사’ 출판기념회와 한국언론인연합회 창립 5주년 기념식이 함께 열린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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