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 강조 → 다인종 현실 수용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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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는 7일 외국인근로자, 결혼이민자 증가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혼혈인에 대한 차별 시정 요구가 확산됨에 따라 초중고교 교과서 개정을 통해 국민 인식을 바꿔 나가기로 했다.

교육부는 초중고교 도덕 교과서에서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임을 강조해 왔으나 글로벌 시대에 국가 간 인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여 살아야 하는 현실을 교과서에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차기 교육과정 개정 공청회’를 열었고 지속적인 보완을 거쳐 내년 2월 확정 고시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공청회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시안) 연구개발’ 정책 연구를 맡겨 마련한 교과서 개정 시안을 내놓았다.

현행 고교 도덕 교과서의 ‘민족 분단과 남북한 사회 현실’ 단원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단일민족으로서 수많은 국난을 겪으면서도 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하여 통일국가를 발전시켜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내용이 반영될 예정이다.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의 ‘국가 민족 지구공동체의 관계’ 단원에는 문화 차이 때문에 상대에 대한 차별이나 경시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편견 극복과 관용의 사례가 실린다.

또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의 ‘세계평화와 인류애’ 단원에는 타 문화에 대한 편견 극복을 위해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상호이해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려는 가치와 태도를 길러야 한다는 내용이 반영된다.

교육부 김양옥(金良玉) 교육과정정책과장은 “국제결혼 등으로 인구 구성이나 생활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어릴 때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민족주의는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달라진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열린 시각을 제공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와 “인종과 민족은 구분돼야 한다”며 반대하는 분위기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양대 임지현(林志弦) 교수는 “닫힌 민족주의와 집단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워드가 제공했지만 그 또한 한국의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민족주의의 양면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하(愼鏞廈) 한양대 석좌교수는 “민족은 언어와 역사,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로 인종과는 구분해야 한다”며 “민족 속에 다른 인종도 동화할 수 있고 다양한 하위 문화를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해야지 단일민족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영우(韓永愚) 서울대 명예교수도 “인종주의적 편견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지만 민족주의마저 부정해선 안 된다”며 “고려시대 말과 일제시대는 단일민족이 강조되던 시기였는데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시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단일민족 개념, 최남선 불함문화론 등 통해 구축

‘민족’이라는 개념과 용어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데는 학계에서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민족이 근대 이전부터 객관적으로 실재하던 언어·문화 공동체를 규정한 것이냐, 아니면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맞춰 창조한 ‘상상의 공동체’냐는 문제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민족이란 개념은 1905년을 전후한 시기에 도입됐다. 한국은 이 시기에 국권을 빼앗겨 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와 상관없이 존재 근거를 지니는 민족 개념이 큰 힘을 발휘했다.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1908년)에서 역사의 주체를 민족으로 규정했다. 이후 민족 개념은 박은식 정인보 최남선 등을 통해 발전 강화됐다. 특히 최남선은 ‘불함문화론’(1926년)과 ‘백두산근참기’(1927년)를 통해 민족 시조로서의 단군과 민족 성산으로서의 백두산을 부각시키면서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믿음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부터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일제강점기라는 주장과 광복 직후 민족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부터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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