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건드려야 뜬다?… 가요계에 ‘동성애 코드’ 넘실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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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여성 듀오 ‘수’는 데뷔하자마자 ‘동성애 그룹’이라 불렸다. 멤버 두 사람이 서로 껴안은 재킷과 야릇한 뮤직비디오 때문. 1999년 데뷔한 여성 듀오 ‘허쉬’ 역시 멤버들이 볼을 맞대고 찍은 재킷 때문에 한 방송사에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경고’를 들었다.

2006년 4월. 가수 박선주는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신곡 ‘오버 더 레인보우’를 선보였다. 2일 열린 그녀의 콘서트 무대에는 6년 전 “나는 동성애자”라며 커밍아웃한 탤런트 홍석천이 나서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동성애는 ‘문화 트렌드’다. ‘왕의 남자’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하면서 광고, 패션 등에서도 동성애가 ‘금기’가 아닌 ‘유행’ 소재가 됐다.

○ 새로운 사랑 노래… 동성애 가요

가수 백지영은 2년 3개월 만에 최근 5집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컴백보다 더 화제였던 것은 타이틀 곡 ‘사랑 안 해’의 뮤직비디오였다. 노래 내용은 동성애와 무관하지만 탤런트 정다빈과 김미소가 출연한 ‘사랑 안 해’의 뮤직비디오는 두 여성 간의 사랑을 다뤘다. 백지영은 “성적 소수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인 가수 반디의 데뷔곡 ‘여자를 사랑합니다’는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성이 “이젠 나란 여자를 사랑합니다”라고 다짐하는 내용. 하지만 뮤직비디오는 이와 사뭇 다른 내용이다. 두 여성이 주고받는 야릇한 눈빛, 포옹 등 동성애적 요소가 군데군데 삽입됐다.

대중음악에서의 ‘동성애 코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팝음악의 경우 여성 로커 멜리사 에서리지의 ‘컴 투 마이 윈도’(1994년), 재닛 잭슨의 ‘프리 존’(1997년), 2003년 레즈비언 콘셉트의 데뷔곡 ‘올 더 싱스 쉬 세드’로 스타덤에 오른 러시아 출신의 여성 듀오 ‘타투(t.A.T.u)’ 등 1990년대 중반부터 동성애를 노래한 팝 음악이나 뮤직비디오가 적지 않았다.

○ 성적 소수자 대변? 상업적 마케팅?

그러나 최근 발표된 이른바 ‘동성애’ 가요가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한 다원주의 확산인지 ‘트렌드’에 편승하는 마케팅의 일환인지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가요 팬이나 대중음악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물론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유행 따라가기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박선주는 “동성애를 다룬다고 동성애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성애는 대중음악이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백지영도 “다원주의가 인정받는 사회에서 이성애든 동성애든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유행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박은석 씨는 “성전환 수술을 한 가수가 활동할 정도로 우리 대중문화가 개방돼 동성애도 일시적 현상에 머물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새로운 문화 현상이 유입되는 초기에 나타나는 상업적인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에 불필요한 성적 자극, 관심 끌기, 상업성 위주의 노래들이 일시적으로 한국 대중가요를 뒤덮을 소지는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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