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한번 國手는 영원히 그 이름으로 사느니…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 국수, 김 국수, 윤 국수, 하 국수….

국수전 타이틀을 가졌던 기사들을 호칭할 땐 항상 성 뒤에 ‘국수’를 붙인다.

그가 다른 타이틀을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그는 늘 ‘국수’로 불린다. ‘국수’란 이름이 갖는 명예와 권위는 그만큼 대단하다. 국수전이 이런 위치에 오른 것은 최초의 신문 기전으로 현대 한국 바둑 발전의 초석을 놓았고 국수에 올랐던 기사가 당대 최고의 기량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1956년 창설된 국수전이 드디어 50기를 맞았다. 한국 바둑의 역사는 곧 국수전의 역사와 통한다.

▽국수전의 출범과 조남철 시대=국수전은 1956년 국수 제1위전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첫 기엔 조남철 신호열 김명환 김봉선 등이 참가해 조남철 9단이 전승으로 우승했다. 이후 9기까지는 조남철 9단의 독무대였다. 김인 9단은 6기 도전기에서 1 대 3으로 진 뒤 실력 부족을 절감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66 철옹성 조남철 무너지다
조남철 8단(오른쪽)은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젊은 도전자 김인 5단의 도전에 힘없이 무너져 10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김인 시대의 개막=김인 9단은 일본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1963년 귀국한 김 9단은 1966년 드디어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당시 김 9단은 두면 이겼다고 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1965년엔 27승 3패로 승률 90%, 1968년엔 40연승을 포함해 50승 6패로 승률 89.3%를 기록했다. 김 9단의 승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73 하찬석-윤기현 등 군웅할거
18기 국수전에서 패배한 윤기현 7단(왼쪽)이 새 국수 하찬석 5단과 악수하며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군웅할거 시대=1972년 16기에서 김인 9단의 7연패를 저지한 것은 윤기현 9단이었다. 이 해에는 서봉수 9단이 혜성처럼 등장해 조남철 9단을 누르고 명인을 차지하는 등 바둑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하찬석 조훈현 9단도 군대에서 칼을 갈고 있었고 누구 하나 확실하게 패권을 쥐지 못했다.

1973년 18기에는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하찬석 9단이 윤기현 9단을 물리쳤다.

▽조훈현 9단의 10연패=하 9단 바로 아래 연배의 조훈현 9단은 1974년 최고위전 우승을 시작으로 조훈현시대의 시동을 걸었다. 조 9단은 1976년 20기 국수전에서 하 9단을 이기고 국수를 넘겨받았다. 3, 4년이 지나자 서봉수 9단 말고는 아무도 조 9단을 제지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조-서 시대’가 펼쳐진다. 국수전에서 조-서의 대결은 1980년부터 시작됐다. 조 9단은 이 해 국수위에서 서 9단의 도전을 물리치고 서 9단의 유일한 보루였던 명인마저 빼앗아 전 기전을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후 1986년까지 조 9단은 흔들림이 없었다.

1987 조훈현 vs 서봉수 불꽃 대결
국내파 기사의 국수전 첫 우승. 서봉수 9단(왼쪽)이 30기에서 조훈현 9단을 3 대 0으로 물리쳐 새 시대를 열었다.

▽순국산 바둑의 재기=국수전은 29기까지 일본에서 유학한 기사들이 차지해 왔다. 서봉수 9단이 1987년 30기에 도전자가 됐을 때 주위에선 모두 조훈현 9단의 방어를 점쳤다. 그러나 ‘된장 바둑’인 서 9단은 3 대 0 완봉으로 조 9단을 물리치는 이변을 연출하며 국수에 올랐다. 첫 국내파 기사의 국수 쟁취였다. 더구나 이듬해 방어마저 성공해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1990 무표정 소년, 스승을 넘다
1990년 10월 10일 15세 국수가 등장했다. 이창호 9단은 34기에서 조훈현 9단을 물리친 뒤 무안한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다.

▽조훈현 이창호 9단의 사제 대결=조훈현 9단은 한번 국수를 빼앗긴 기사가 다시 국수에 오르지 못했던 징크스를 깨고 32기에 서 9단에게서 타이틀을 회수했다.

이듬해 14세의 어린 소년 이창호 9단이 도전 무대에 올랐으나 1 대 3으로 물러섰다.

1990년 다시 도전한 이 9단은 전 해의 이창호가 아니었다. 1989년 최고위전부터 접수한 그는 국수전에서 3연승으로 스승을 셧아웃시켰다. 15세 국수의 등장에 바둑계는 찬탄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둑 기량은 20세 이후 완숙해진다는 통념을 깨뜨린 사건이었다.


2000 中 루이 첫 여성국수 등극
중국 출신 여성 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왼쪽)이 2000년 43기에서 조훈현 9단을 이겨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외국인 여성 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조-이’사제 간의 대결 국면을 깨뜨린 것은 중국 출신 여성 기사인 루이나이웨이 9단이었다. 1999년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공식기전에 출전하기 시작한 그는 2000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 9단을 누른 기세를 타고 도전기에서도 조 9단을 2 대 1로 꺾어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2004 최철한 신예의 시대 예고
최철한 9단(오른쪽)이 48기에서 이창호 9단을 3-0으로 물리치고 2연패에 성공했다. 최 9단의 국수 등극은 세대교체를 예감케 했다.

▽최철한 9단의 부상=루이 이후 다시 조-이 대결이 펼쳐지다 2004년 최철한 9단의 반란이 일어났다.이 9단이 국내 기전을 후배 기사에게 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47기에 도전한 최 9단은 2 대 2 동률 후 최종국에서 흑을 잡아 승리하며 국수를 품에 안았다. 최 9단은 48기에선 이 9단을 3 대 0으로 물리쳐 2연패에 성공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국내바둑史주도한 국수전 50년▼

공개해설에 몰려든 인파
1968년 동아일보 초청으로 김인 국수와 일본의 린하이펑 9단이 한국에서 특별대국을 벌였을 때 공개 해설이 진행된 동아일보 사옥 앞에 바둑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수전 50년 역사는 숱한 에피소드와 기록,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국내 기전 사상 최초’로 시도한 것이 적지 않다. 국수전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들을 정리했다.

▽라디오로 바둑 생중계=1957년 10월 27일 동아일보 석간을 받아본 독자들은 깜짝 놀랐다. 바둑 기보란 옆에 평소 기보의 두배 크기인 백지 기보가 있었던 것. 이튿날은 2기 국수전 도전 7번기 1국이 열리는 날이었다. 빈 기보 옆에는 “내일 대국 수순을 라디오로 방송할 테니 받아 적으며 감상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음 날 과연 KBS 라디오에서 정시 뉴스가 끝난 뒤 ‘제 1착은 17의 4, 제 2착은 4의 3…’ 등 돌의 위치를 좌표로 불러줬다. 전무후무한 라디오 바둑 생중계였다.

▽7번기에서 7 대 0의 승부=1957년 열린 2기 국수전 도전기는 7번기로 열렸다. 도전자는 민영현 2단(당시), 국수는 조남철 5단이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조 5단이 4연승을 거뒀다. 요즘 같으면 이미 승부가 난 만큼 도전기를 마쳐야 하지만 당시엔 7번기를 꽉 채웠다. 그 결과는 조 5단의 7 대 0 승리.

▽선상 대국=1993년 8월 1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를 흐르는 볼가 강에 유람선 알렉산더호가 정박했다. 이 배에 당시 이창호 6단, 조훈현 9단과 바둑 관계자들이 승선했다. 이윽고 김인 9단은 제37기 국수전 도전 1국의 시작을 선언했다. 국내 도전기 사상 최초의 선상 대국이 열린 것. 이 6단이 12집반 승을 거뒀다.

▽금강산 대국=2005년 1월 48기 국수전 도전 3국은 국내 바둑 사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땅 금강산에서 열렸다. 전날 내린 폭설 덕분에 눈 덮인 개골산 아래서 운치 있는 대국이 펼쳐졌다. 2 대 0으로 앞서던 최철한 9단이 이창호 9단을 이겨 2연패를 이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국수전 50년사
연도우승준우승
11956조남철 5단-
21957조남철 5단민영현 2단
31958조남철 6단김명환 4단
41959조남철 6단김명환 4단
51961조남철 7단김봉선 5단
61962조남철 7단김인 4단
71963조남철 7단이창세 3단
81964조남철 8단이창세 3단
91964조남철 8단윤기현 5단
101966김인 5단조남철 8단
111966김인 6단윤기현 6단
121967김인 6단윤기현 6단
131968김인 6단조남철 8단
141970김인 7단김재구 5단
151971김인 7단조남철 8단
161972윤기현 7단김인 7단
171972윤기현 7단노영하 4단
181973하찬석 5단윤기현 7단
191975하찬석 6단강철민 5단
201976조훈현 6단하찬석 6단
211977조훈현 7단홍종현 5단
221978조훈현 7단김수장 3단
231979조훈현 7단하찬석 7단
241980조훈현 8단서봉수 6단
251981조훈현 8단서봉수 7단
261982조훈현 9단서봉수 7단
271984조훈현 9단서봉수 7단
281985조훈현 9단서봉수 7단
291986조훈현 9단서봉수 8단
301987서봉수 9단조훈현 9단
311988서봉수 9단조훈현 9단
321988조훈현 9단서봉수 9단
331989조훈현 9단이창호 3단
341990이창호 4단조훈현 9단
351991조훈현 9단이창호 5단
361992조훈현 9단이창호 5단
371993이창호 6단조훈현 9단
381994이창호 7단조훈현 9단
391995이창호 7단조훈현 9단
401996이창호 9단조훈현 9단
411997이창호 9단서봉수 9단
421998조훈현 9단이창호 9단
432000루이 9단조훈현 9단
442001조훈현 9단루이 9단
452002이창호 9단조훈현 9단
462003이창호 9단조한승 6단
472004최철한 7단이창호 9단
482005최철한 9단이창호 9단
492006이창호 9단최철한 9단
도전기가 한 해 두 번 열리거나 건너뛴 해도 있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