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교수“지도층의 윤리 불감증 그 해법은 儒學에 있죠”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코멘트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유학사상의 위대함은 어느 시대에서건 그 시대정신을 제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갖췄다는 점이지만 그 그늘에 너무 안주하다 보면 시대의 낙오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유학사상의 위대함은 어느 시대에서건 그 시대정신을 제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갖췄다는 점이지만 그 그늘에 너무 안주하다 보면 시대의 낙오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그의 연구실은 책의 숲이었다. 대개 교수 연구실은 사방의 벽을 돌아가며 입 구(口) 자 형태의 책장이 설치된다. 그런데 그의 연구실은 한복판까지 책장이 설치돼 날 일(日) 자구조다. 그나마 빈 공간도 책으로 가득 차 고시생의 방보다 더 비좁게 느껴졌다.

최근 유학(儒學)을 주제로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정근(41) 성균관대 교수. 그는 인(仁), 덕(德), 효(孝), 서(恕) 등 유학의 핵심 개념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와 유학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탐구하는 연구로 우리 유학 연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젊은 유학자다. 그래서일까 그의 서림(書林)에는 유교경전뿐 아니라 서양철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저술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는 최근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심산)을 펴내며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유학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펼쳐 보였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논어의 위대함은 2500여 년간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텍스트의 개방성에 있다 △따라서 ‘유교=성리학’으로 고정된 한국의 유학관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비판은 유학사상이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통해 거듭나는 ‘스승 살해’의 전통에서 발전해 왔음을 간과한 무지의 소치다 △유교자본주의론은 동아시아 내면의 필요가 아니라 서구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타율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에서 찾아내야 할 유학의 의미는 무엇일까.

“황우석 교수, 최연희 의원, 이해찬 전 총리 등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들에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손해 가는 진술은 절대 하지 말라’는 미란다원칙의 (왜곡된) 일상화가 숨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기 전까지는 절대 인정하지 말고 설사 인정하더라도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입니다.”

신 교수는 이러한 윤리 불감증을 해소할 어떤 출구로서 유학의 가치에 주목했다.

“유교에는 성(誠)과 신독(愼獨)의 전통이 있습니다. 남의 눈길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재판정이 아니라 내면의 재판정을 더 중시한 그런 도덕관의 재확립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 유교적 윤리의 부활이 아니라 유교를 현대적 윤리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한 효(孝)를 관용과 배려의 수평적 개념인 서(恕)로 대체하고, 옳고 그름의 식별보다 인간관계의 평화를 더 중시한 덕(德) 대신에 옳고 그름의 지적 인식이 가미된 인(仁)을 강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공자의 시대가 도덕의 충만화를 꿈꾼 ‘최대 도덕’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인간에 대한 억압을 줄이기 위한 ‘최소 도덕’의 시대”라며 “‘착한 사람이 되라’거나 ‘학교생활 잘 하라’는 식의 추상적 윤리가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항상 따뜻하게 인사하라’ ‘이성의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마라’ 등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윤리를 강조할 때”라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