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해설/윤정국]비구니·수녀·교무 ‘동거동락’이 남긴것

  • 입력 2006년 3월 7일 19시 54분


코멘트
불교의 비구니 스님과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 등 한국 여성 수도자들로 구성된 삼소회 일행 16명이 지난달 5일부터 23일까지 18박 19일간 인도,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4개국의 세계종교 성지들을 순례하고 돌아와 종교계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종교간 대화나 화합 행사로 크리스마스나 사월초팔일 등 각 종교의 중요한 기념일에 서로 축하메시지를 보내거나 축하 플랜카드를 내거는 일, 혹은 불우이웃돕기 공동음악회를 개최하는 일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가 다른 수도자들이 한솥밥을 먹고 여행을 다녀 종교사상 획기적인 실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기대도 컸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본 기자는 이들을 따라 동행 취재에 나서 우리나라의 종교간 화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생생하게 지켜보는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기자 해설 동영상 보기]

삼소회는 5년 전부터 불교 사찰이나 가톨릭 성당, 원불교 교당 등을 돌며 매달 한 차례씩 기도모임을 가지며 종교간 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성지를 순례하겠다는 꿈을 키워오다가 이번에 이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이들은 첫 방문지로 지난달 5일 원불교 전남 영광 성지를 방문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깨달음 터에 세워진 ‘만고일월비’ 앞에서 봉고식을 가진 뒤 성지순례에 나서는 ‘삼소회 기원문’을 채택했습니다.

다음날 전북 익산 원불교 총부를 방문한 회원들은 이광정 종법사로부터 “이번 순례를 계기로 인류사에 평화를 확산시키는 한판 기운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는 격려의 말을 듣고 이날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인도를 시작으로 해외 순례에 나섰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하면서 기자가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과연 수도자들이 다른 종교의 성지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부처님이 깨달음의 진리를 처음 설법했다는 사르나트 등 인도의 불교성지를 순례할 때 과연 수녀들은 이교도의 성지에 와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가톨릭의 공마리아 수녀는 여기에 하나의 전범을 보였습니다. 인도 방문 첫날 바라나시에 있는 한국 사찰 녹야원(鹿野苑)에 여장을 풀고 방을 배정할 때 그는 ‘가톨릭의 수녀는 타 종교인과 같은 방을 써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비구니 스님, 교무와 함께 한 방을 썼습니다. 나중에 한국 들어가서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종교 간 화합이란 삼소회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실천했다”며 “내 스스로 이를 적극 해명하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종교를 떠나 삼소회 수도자들이 다 함께 슬퍼한 적도 있었습니다. 인도의 수자타 마을을 방문해 인도 카스트 4계급에도 들지 못한다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만났을 때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고, 런던 평화공원을 찾아가 폭탄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할 때는 종교가 테러의 한 원인이 된 데 대해 가슴 아파했습니다. 또 인도 바라나시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를 알현하거나 런던에서 이슬람문화센터 두바얀 사무총장을 만나 종교간 화합과 평화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절실한 대화를 나눴을 때는 무척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성지에서 해당 종교의 수도자들이 감격해 눈물을 흘리면 다른 회원들이 함께 울면서 서로 눈물을 훔쳐 주는 감동적인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그러나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 등에서 가진 예배의 형식이나 기도문 참가범위를 둘러싸고는 갈등을 빚어 서로 서먹해진 일도 있었습니다. 한 스님은 “불교성지에서 수녀들이 절을 하지 않았으면서 기도문에 왜 우리를 넣어놨느냐”고 항의했고, 이에 대해 한 수녀는 “불교성지에서 탑돌이도 같이 했는데 그 정도 기도문도 같이 못 읽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오해와 갈등은 쉽게 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5년 동안 함께 기도했던 회원 중 5명만 이번 여행에 참가한 점이 이런 오해를 낳은 것으로 자체 분석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삼소회 뿐 아니라 다른 ‘종교간 대화 모임’도 이런 점에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삼소회 회원들,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회원들은 이번 순례의 경험을 통해 삼소회를 한 단계 업그레드 시킬 ‘종교간 화합모임’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무튼 삼소회의 이번 성지순례는 우리 모두 종교의 근원으로 돌아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줬습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