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로버트 케네디 저격범 범행 시인

  • 입력 2006년 3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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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맨추리안 캔디데이트’(1962년)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동료들을 이끌고 탈출한 미군이다. 금의환향한 그는 대통령 저격 음모를 꾸민다. 실은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공산주의자의 최면에 걸려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세뇌받은 것. 암살을 준비하는 그의 눈은 평온하다.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의 눈이 바로 그랬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저격범으로 체포됐을 당시 그는 꿈을 꾸는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암살의 배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968년 6월 미 로스앤젤레스 앰배서더호텔.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케네디 의원의 캘리포니아 예비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총알 8발이 발사됐다.

권총을 들고 있던 시르한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방아쇠를 당긴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시르한은 이듬해 3월 3일 법정에서 마침내 범행을 시인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종신형으로 감형돼 현재도 복역 중이다.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은 팔레스타인 이민자인 시르한이 케네디 의원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격분해 단독으로 암살을 감행했다는 내용의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음모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2 저격자’가 있으며 시르한은 단지 최면 상태에서 탄알이 장전되지 않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주장이다. 시르한은 앞쪽에 있었는데 케네디 의원은 뒤쪽에 총을 맞은 것, 케네디 의원을 관통한 총알은 시르한의 위치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됐다는 것이 그 근거다. 미 중앙정보국(CIA), 갱 조직, 노동조합, 무기회사 등이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시 미국인 4명 중 3명이 음모론에 동의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당국이 지목한 범인은 허수아비란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베트남전쟁의 수렁 속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내리막길로 치닫던 때였다.

음모론은 무책임하다. ‘믿거나 말거나’ 또는 ‘아니면 말고’가 기본이다. 그렇지만 황당무계하다고 그냥 웃어 넘겨 버릴 수만은 없다. 그것은 암울한 한 시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불신과 의혹이 넘실대는 사회에 싹을 내리고 끝없이 분화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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