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부활하다… 국내외 철학계 화두로 떠올라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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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부활하고 있다. 18세기 독일의 관념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영국의 경험론과 유럽 대륙의 합리론을 종합한 유럽근세철학의 완성자로 꼽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유물론이 득세하고 근대성의 극복이 철학계의 화두가 되면서 칸트는 극복돼야 할 철학자로 치부됐다. 그러면서 일반인에게서 칸트는 점점 멀어졌다. 그의 3대 명저로 꼽히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불면증을 치료할 ‘수면제’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철학계에서 ‘칸트의 재발견’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칸트학회가 지난주 펴낸 ‘포스트모던 칸트’(문학과지성사)는 흔히 니체의 적자로만 알려진 푸코, 들뢰즈, 데리다, 리오타르, 레비나스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실상 칸트 철학의 자장(磁場)안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기초했으며 시간과 공간의 범주 개념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명확히 했다. 이는 인간 주체의 절대성을 강조한 헤겔의 관념철학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피터 하 인하대 강사는 하이데거를 포함한 포스트모던 철학이 인간 주체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반(反)헤겔주의의 전통에 있으며 헤겔과 대결을 위해 칸트의 사유를 새롭게 발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양운덕 고려대 연구교수는 푸코야말로 칸트의 계몽과 비판의 개념을 새롭게 벼려내 자신의 철학적 무기로 만들어냈다면서 “푸코만큼 칸트의 아들이 되기를 열망한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말한다. 서동욱 서강대 교수는 칸트와 들뢰즈의 관계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비유하며 들뢰즈가 칸트철학에 의거해 자신의 분열증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 뒤에서 ‘초월적 경험론’을 끄집어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칸트의 재발견은 국내 학계만의 연구결과는 아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철학을 결합시켜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슬로베니아 학파도 ‘최초의 정신분석학자’로서 (프로이트가 아닌) 칸트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헤겔주의의 전통에 있는 슬로베니아학파에서 ‘여자 지젝’이라 불리는 알렌카 주판치치가 주목하는 칸트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 윤리를 정립하기 위해 영원불멸성이 요청된다고 말한 칸트다. 주판치치는 ‘실재의 윤리-칸트와 라캉’(도서출판b·2004년)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 두려움으로 라캉의 욕망이론을 외면하듯이 칸트의 윤리이론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라캉만큼 칸트가 실재의 중추를 건드리는 현대적 이론가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긴키(近畿)대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트랜스크리틱’(한길사·2005년)에서 칸트가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듯이 관념론자인 칸트와 유물론자인 마르크스를 종합해내며 그러한 창조적 사유방식의 원천으로 칸트를 주목한다.

칸트학회 회장인 강영안 서강대 교수는 “새 종교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면서 탄생했듯이 칸트 이후의 철학은 칸트를 십자가에 매달면서 새 철학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면서 “칸트는 잊혀진 철학자 혹은 감탄할 만하지만 더는 유효하지 못한 철학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 사상의 쟁점들에 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동반자”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 ‘1973년의 핀볼’ 속 남자 주인공의 말처럼 “칸트는 여전히 훌륭하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 안에서만 살았던 그의 사유가 물질주의가 판을 치는 이 후기자본주의, 세계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현대적인 만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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