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神을 버리니 또 다른 神이 다가왔다…‘마음의 진보’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코멘트
◇마음의 진보/카렌 암스트롱·이희재 옮김/512쪽·2만 원·교양인

수녀원이 세상의 전부였다.

원장수녀에게 한번 혼이라도 날라치면 온 우주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외롭거나 비참한 느낌이 들어도 기댈 데가 없었다. 기다란 기숙사에선 밤이면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왜 우는지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 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기도는 갈수록 공허해졌다. 그토록 간절히 기구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를 경험할 수 없었다. 단 한번도 신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예수가 신이라는 사실을 누가 안다는 것일까? 아니, 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 묵상에 잠긴 다른 자매들을 보면서도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책은 열일곱 살 때 수녀원에 들어갔다 7년 만에 환속한 수녀의 자서전이다.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의 고통에서 길어 올린 시리도록 맑은 깨달음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비틀스가 누구냐?”고 물을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저자. 그녀는 뒤늦게 진학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세상과 다시 사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마음속의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어찌하지 못한다. 자신을 하느님께 선물로 바치는 데 실패한 사람이란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상도 없었고 헌신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정원이었다. 거기서 홀로 웅크린 채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종교를 부정하고 신을 버린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오랜 방황 끝에 마음의 빛을 찾게 된 것은 유대교의 랍비 힐렐의 가르침을 접하고서였다. “유대교에서는 신학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나 복종해야 하는 교리 따위는 없습니다. 믿고 싶은 걸 믿으면 돼요. 우리는 무얼 믿느냐에 개의치 않아요. 그저 행할 뿐입니다.”

믿음을 개의치 않다니? 그 한마디는 오랫동안 그녀를 짓눌러왔던 종교의 도그마를 한 순간에 깨부쉈다.

마침내 종교의 편견에서 벗어난 그녀는 같은 뿌리를 가졌으나 1000년 넘게 대립해 온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기원을 파들어 가며 세 종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신의 역사’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신의 역사’는 그녀에게 탐구이자 해방이었다. ‘어느 종교든 아픔을 맨 위에 놓는다’는 공감의 종교학, 체험의 종교학은 그 소중한 결실이다. 종교는 도덕의 미학이요, 윤리의 연금술이었다.

‘믿는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believe’의 고어 ‘베레벤(beleven)’은 사랑한다는 뜻이 아닌가. 라틴어 ‘크레도’(나는 믿는다)의 어원은 ‘코르도’(나의 심장을 바친다)가 아닌가. 믿으려면 나를 던져야 한다. 먼저 나를 바꿔야 한다. 구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공감은 같이 느끼는 것이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것은 세상을 더 높은 데서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다. 우리가 자아의 막대기 저편에 자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신과 함께 자리한다.

경전은 절로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종교의 내밀한 생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과 머리를 열었을 때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신앙은 실천이지 결코 믿음이 아니다.

“종교가 참다운 까닭은 그것이 생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잠들어 있을 영웅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원제 ‘The Spiral Staircase’(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