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마흔 즈음에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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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소련과 미국은 다투어 달에 무인탐사선을 착륙시켰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우주선 스푸트니크호를 먼저 쏘아올린 뒤 우주는 ‘누가 먼저냐’를 두고 양 체제가 각축을 벌이는 전장이 되었다. 8월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100만 홍위병이 외치는 구호로 요동쳤다. 서방세계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체제 갱신의 영구혁명이 시작됐다”고 환호했지만 기실 그 열정의 정체는 권력 2선으로 밀려났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거대한 ‘한판 뒤집기’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또 다른 뉴스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북한의 8강 진출이었다. 북한은 8강 상대인 포르투갈에도 3골을 먼저 뽑아냈다. ‘축구의 신’ 에우세비우가 전후반 4골을 터뜨리며 5-3의 전설적인 역전극을 만들어 내지 않았더라면 한민족의 월드컵 4강 신화는 36년이 앞당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해 나훈아라는 청년이 ‘천리길’이라는 노래로 데뷔했지만 젊은이들이 트위스트를 추어대며 열광한 노래는 단연 ‘키다리 미스터 김’이었다.

인류의 정신사마저 잿더미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세계는 그렇게 새로운 염원과 욕망, 새로운 혼돈에 몸을 던졌다. 그 1966년에 계간 ‘창작과 비평’이 창간됐다. ‘창비’와 동갑내기인 66년생들은 올해 만 마흔 살이 되었다.

어느 세대엔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않을’ 20대가 있을까. ‘창비’의 스무 살 언저리도, 66년생들의 20대도 거칠었다. 19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강제 폐간됐다가 1988년 복간되기까지 ‘창비’는 서가에 조용히 꽂혀 있지 못했다.

‘창비’ 읽기를 하며 20대를 시작한 66년생들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을 함께 탐독하며 스무 살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지워 내려 애썼다. 자신들이 태어난 해의 그 설레던 기운처럼, 새롭게 안 지식으로 세상을 서둘러 바꾸는 일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006년 봄호로 창간 40주년을 기념한 ‘창비’가 내놓은 선언은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부터 타성을 떨치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훈장이라도 되듯 정치권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40대 주류론’이 공공연한 지금, ‘창비’의 주류 탈피론은 새삼 그 창간사를 떠올리게 한다. ‘창조와 저항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점이 되겠다’고 했던 창간 정신이 ‘주류 편입’이 되는 것이 마흔 살 성숙의 의미는 아니라는 자각이리라. ‘창비’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 한때 그 세례를 받고 성장한 40대도 아직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세월이 변화시키는 게 있기는 하다. 원고지 시대에 태어난 ‘창비’는 창간 40주년 기념 부록으로 시인들이 직접 자작시를 낭송한 동영상 CD를 독자들에게 선물했다.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창비’ 시선(詩選)이 매끈한 디지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파릇하던 다짐의 빛마저 바래지는 않았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이성부 시인의 ‘봄’ 중)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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