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선과 악, 그 둘은 하나…‘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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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미르체아 엘리아데 지음·최건원 임왕준 옮/304쪽·1만8000원·문학동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부분은 그 도입부가 아닐까. ‘천상의 서막’에서 신(神)이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보여 준 것은 놀랍게도 너그러움, 차라리 ‘공감’이었다.

신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찌르고 자극하며 악마로서 일해야 하는, 이 친구를 기꺼이 그들(인간)에게 붙인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호응하며 읊조린다. “나는 기꺼이 영감님(하느님)을 만난다네….”

메피스토펠레스는 항의하고 부정하는 영(靈)이다. 삶의 흐름을 멎게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의 진행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인간의 활동을 자극한다. 생을 북돋는다. 괴테에게 악과 오류는 생산적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선에 대항하여 싸우지만 결국 선을 행한다. 생을 부정하는 이 악마는 신의 협조자인 것이다. 괴테는 악과 오류를 인간의 삶에서뿐 아니라 ‘하나-전체(Tout-Un)’로 여겼던 우주에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모순으로 인해 비옥해진다.”

이 대립의 합일, 그 총체성의 신비는 어떤 의미에서 신에 대한 완벽한 정의다. 철학의 선사(先史), 사유의 체계화 이전에 상반되는 모든 것은 신에게서 온전히 결합되었다. 신과 악마의 우정, 성자와 마녀의 혈연관계에 대한 숱한 신화와 전설은 악의 존재, 그 ‘창조의 결함’이라는 신비를 꿰뚫어보고자 한다.

이란의 주르반교와 루마니아의 민간신앙에서 신과 사탄은 형제다. 에티오피아의 전설은 성자와 마녀를 남매로 등장시킨다. 하느님이 뱉은 가래침에서 악마가 뛰쳐나오고(모르도바 신화), 신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악마를 발견한다(핀란드 전설). 또한 사탄은 원래 하느님의 그림자였다(불가리아 민요)….

이 대립의 합일, 그 총체성의 신비는 양성인(兩性人)의 신화를 재현한 발자크의 환상소설 ‘세라피타’에서 절정을 이룬다. 주인공 세라피투스-세라피타는 성(性)이 다른 두 존재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고대사회에서 자웅동체(雌雄同體)는 이상적인 인간의 표상이었다. 신은 전체이며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의 분리는 원죄의 결과였다. 그리스도는 비록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죽었지만 부활할 때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사가로 꼽히는 저자. 이 ‘종교학의 오디세우스’는 1962년 처음 발간된 이 책에서 인도사상이나 노장철학에서 만남 직한 ‘대립의 합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세계의 문화풍경을 관통하며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그려 나가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그리고는 서양의 사유가 더는 플라톤 철학의 범주 안에서 ‘영광스러운 고립’에 안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무의식의 활동에 대한 매혹과 신화와 상징에 대한 관심, 이방과 원시 및 고대를 향한 열정, 이 모든 타자(他者)와의 만남은 새로운 과학, 새로운 종교, 새로운 휴머니즘의 도약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

“대립의 합일이라는 고대의 주제와 모티프들은 오늘날에도 인간 드라마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수준의 문화적 삶에, 현대인의 꿈과 환상에 개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낯설고 기이한 비(非)유럽적인 요소들을 껴안아야 한다.”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발자크의 세라피투스-세라피타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작품이 유럽문학에 속한다고 보았으나 그 기원은 그리스와 지중해와 고대 중동과 아시아를 넘어 더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우스트’와 ‘세라피타’에서 다시 살아난 신화들은 아주 먼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온 것이다. 그것들은 역사 이전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시간을 뚫고’ 우리 곁에 찾아온 것이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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