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계 개척자를 잃었다” 국내 미술계 애도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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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白南準) 씨의 별세 소식을 접한 국내 미술계 인사들은 “한국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상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경성 석남미술재단 이사장은 “그는 한국인이라기보다 세계인”이라며 “다시 나오기 어려울 불세출의 천재가 갔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사장은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장 재직 당시 ‘한국적 실정에 무리’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 백 씨의 작품 ‘다다익선’을 설치한 인연이 있다. 이 이사장은 “즉흥적으로 부탁했는데 그가 흔쾌히 승낙했다”고 소개하면서 “말년에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온 정신적 의지력은 예술가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했던 ‘비디오 때, 비디오 땅’이라는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던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세계적인 톱스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문명을 이루는 과학과 정보매체가 백 씨 덕택에 오늘날의 시각 매체문화라는 것으로 탄생한 것”이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희 쌈지스페이스 관장은 “백 선생은 한국 미술계에 한국성, 아시아성이 얼마나 큰 예술의 원동력인지를 일깨워주신 분”이라고 평했다. 진정한 아방가르드(전위) 예술가였고 서양의 아방가르드 미술에 깃든 아시아 정신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만든 점에서 후배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는 게 김 관장의 설명이다.

아트파크 박규형 대표는 “비디오 아트라는, 없던 장르의 창조자이자 최근 각광받는 디지털 예술, 미디어 예술, 레이저 아트 등을 누구보다 앞서 개척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백 씨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 예술가이면서도 정작 국내에서 연구가 부족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김 관장은 “백 선생이 국내에서 평가받지 못했던 점을 두고 외국 예술가들로부터 ‘너희는 보석을 못 알아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백 선생을 신화화하거나 폄훼하는 이중 잣대 속에서 제대로 된 이해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한국 미술사에서 재평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백 선생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협찬사를 섭외하던 중이었는데 선생에 대한 인지도가 생각보다 낮아 마음이 아팠다”면서 “세계적인 한국 예술가에 대해 한국 문화계가 너무 배타적”이라고 지적했다.

백남준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인 경기도는 30일 미술관 건립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준미술관은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의 도유지 1만 평에 올해 6월 착공해 내년 10월에 건립될 예정이며 현재 설계가 진행 중이다.

한편 미국 뉴욕문화원은 2월 24일까지 맨해튼 갤러리 코리아에서 백 씨와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무빙타임’전을 열고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문인희 씨는 “젊은 작가들의 정성을 모아 선생님에게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마련한 행사였는데 선생님 생전의 마지막 전시회가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타계 직전까지 한국여성 주제 작품 활동"▼

“삼촌은 오랜 기간 투병생활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그래도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어요. 뉴욕에 있을 때 계속 드로잉을 하고 데코레이팅도 했었는데….”

29일 타계한 백남준 씨의 조카이자 매니저인 켄 백 하쿠다(55·사진) 씨는 30일 전화인터뷰에서 “정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백 씨 큰형의 아들인 하쿠다 씨는 5년 전부터 미국 뉴욕에 있는 백 씨의 스튜디오 운영을 맡아와 백 씨의 최근 근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 현재 백 씨 장례절차 때문에 마이애미에 머물고 있다. 하쿠다 씨에 따르면 백 씨는 추운 뉴욕의 겨울을 피해 마이애미로 내려가기 전까지 뉴욕에서 ‘한국 여성에게 바치는 존경’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에 몰두해 왔다고 한다.

“한국의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의상이 등장하는 등 아름다운 비디오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이 결국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촌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적인 것에 끌렸던 것 같았어요.”

그는 “삼촌은 29일 오전까지만 해도 마이애미 아파트에서 한국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 ‘대장금’을 시청했다”고 전했다.

가족들과 상의해 보아야 알겠지만 장례식 날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3일이 유력하다고 그는 말했다. 백 씨 시신은 화장한 뒤 유해 일부는 한국으로 보낼 예정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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