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특집/음식]한복려 원장이 재현한 궁중음식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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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멥쌀가루를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쳐서 길게 만든 떡을 백병(白餠·흰떡)이라 한다.

이를 엽전같이 썰어 장국에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곁들여 끓이면 떡국이라 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세찬(歲饌)에는 제사나 손님 대접에 쓰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조선 순조 때 홍석모가 지은 풍속서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떡국 이야기다. 임금도 새해에 떡국을 먹었다. 궁중음식연구원(원장 한복려)에 따르면 궁궐의 정월 세찬은 사대부가(家)와 큰 차이가 없었다.

임금이든 평민이든 하얀 떡을 함께 먹으며 같이 새해를 맞자는 정서가 음식에서도 드러났다.》

좋은 음식을 함께 즐기는 ‘나눔의 정’이 컸던 것도 이유였다. 궁에서 개발된 요리의 비법은 곧 사대부가로 퍼졌고, 세간에 좋다는 음식은 궁궐로 들어왔다. 음식에 관한 한 궁궐의 문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궁중 요리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가장 좋다는 재료를 엄선해 만들었으니 같은 요리라도 수준이 달랐을 것이다.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음식 자문에 응했던 중요무형문화재 38호 궁중 음식 기능보유자 후보인 한복려 원장이 설날 궁중 음식을 재현했다.

궁중요리 전문점 ‘궁연’에서 재현한 궁중세찬 2인상. 궁중 음식은 화사해 보이면서도 맛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변영욱 기자

○ 깊은 맛과 멋

정월 차례는 메(밥) 대신 떡국을 올려 떡국 차례라고도 불렀다. 한 선생이 보관하고 있는 광무 10년(1906년) 정월 차례 목록에 따르면 52가지의 음식이 상에 올랐다. 떡국을 중심으로 갖은 떡과 강정, 찜과 과일은 일반 차례상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한국음식대관’에 따르면 새해 초하루에는 사대부가 부인들과 아이들이 궁에 넘쳤다. 문무백관의 가솔들이 임금에게 새해 문안인사를 여쭙기 위해 궁으로 들어왔다. 왕과 왕비는 아침에 정월 차례를 지낸 뒤 인사를 받느라 종일 서있다시피 했다.

한 원장이 재현한 음식상(사진)은 차례를 지낸 뒤 궁을 찾은 손님들과 함께 나누던 새해 절식(節食). 떡국 대신 ‘병시(餠匙)’라 부르는 만둣국을 기본으로 한 2인상이다.

만둣국도 떡국과 함께 정월 음식. 만두는 중국에서 유래됐지만 껍질에 싼 만두는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궁중에서도 즐겼다. 만두소는 쇠고기에 표고버섯 두부 숙주 배추김치 등을 넣어 빚고, 국물은 쇠고기 양지머리를 우려냈다. 만둣국은 떡국과 마찬가지로 현대인 입맛에는 심심할 정도로 담백한 게 특징.

고추장 등 자극적인 소스를 피하는 궁중 음식의 담백함은 ‘장김치’에서도 발견된다. 장김치는 배추와 무를 간장으로 맛을 낸 일종의 물김치. 동치미와 함께 겨울철 궁중 음식상의 기본 메뉴였다.

배추는 속이 찬 것으로 골라 속대만 씻어 간장으로 절인다. 배추가 숨이 죽으면 도톰하게 썬 무를 2시간 정도 함께 더 절인 뒤 배 밤 대추와 실고추 미나리 갓 버섯 파 마늘 생강을 넣는다. 절인 간장물을 간을 맞춘 뒤 항아리에 담았다가 닷새 안에 먹는 것이 좋다.


○ 담백한 궁중 별미

당시에는 궁중이나 상류층이 아니면 맛을 보기가 힘든 요리들이 있었다. 정월에 즐겨 먹던 음식 중 전복초나 생치구이, 족편은 재료도 귀했지만 만들기도 어려워 요즘에는 생소한 요리다.

전복초는 전복을 통째로 장물에 조려 쇠고기와 함께 먹는 음식. 소금과 찬물에 헹군 전복을 흠집없이 떼어 내 치맛주름 잡듯 칼집을 넣는다. 얇게 저며 두들긴 쇠고기와 함께 양지육수에 꿀과 간장 등으로 맛을 낸 장물로 졸여 살짝 볶아 준다. 은행과 잣가루를 살짝 얹어 먹으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다.

생치구이도 정월에 먹는 진미. 생치(生雉)는 익히기 전의 꿩고기를 말한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처럼 닭고기보다 한 단계 위로 치는 꿩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돼 기력 회복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를 갈라 깨끗이 손질한 생치에 소금과 청장(진하지 않은 간장) 등으로 만든 기름장을 고루 바른다. 찜통에서 20분 정도 쪄낸 뒤 기름을 둘러 지지거나 오븐에 구우면 노릇노릇한 생치구이 완성.

족편은 당시엔 민가에서도 즐겼지만 만들기가 어려워 사라져 가는 요리. ‘우리음식 100가지’에는 “쇠족에 든 단백질인 콜라겐 탓에 묵처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자양음식으로 노인이나 아이에게도 안성맞춤이며, 겨울철 밖에서 살짝 얼렸다가 먹으면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훌륭하다.

깨끗이 씻은 쇠족을 물에 담가 피를 뺀 다음 뼈의 골수가 다 녹아 구멍이 뚫릴 때까지 곤다. 통후추 생강 마늘을 넣어 누린내를 없애고 뼈를 추려 내 버린 뒤 따로 삶은 사태를 함께 넣어 걸쭉하게 끊인다. 약간 식혔다가 석이버섯 달걀지단을 얹어 굳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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