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특집/세뱃돈]새 디자인 5000원권 복돈으로 인기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코멘트
사진=변영욱 기자
사진=변영욱 기자
《‘세뱃돈의 대명사’인 1만 원권이 밀려날 조짐이다. 23년 만에 디자인을 바꾼 새 5000원권이 올해 설날 ‘복돈’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은행 창구에서 가장 대접받는 돈은 율곡 이이 선생이 그려진 새 5000원권이다. 액면가는 세종대왕이 모델인 1만 원권의 절반이지만 5000원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새 5000원권을 세뱃돈으로 쓰려는 고객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5000원권 때문에 설날 복주머니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설날을 앞두고 새 5000원권과 세뱃돈 민심을 취재했다.》

○ 세뱃돈의 ‘정권 교체’

은행들은 새 5000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20일 국민은행 학동역지점(서울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세 차례 배정받은 5000원 신권이 바닥났다”며 “교환을 예약한 고객이 많아 추가 도입분에서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교환 업무량이 많지 않은 한국은행 창구도 업무가 마비될 지경. 이곳에서 만난 이춘수(60) 씨는 “시중 은행에서 신권을 구하기 어려워 한국은행을 직접 찾았다”며 “세뱃돈은 복돈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25만 원을 새 5000원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새 돈에 대한 요구가 늘자 기존 8000만 장(4000억 원) 외에 설날 전까지 8000만 장을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 수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옛 5000원권(1억6500만 장)의 총액과 비슷한 규모.

최근 세뱃돈의 주인공은 1만 원권. 1973년 처음 발행됐을 때는 엄청난 고액권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세뱃돈 주머니를 차지했다. 한국은행 화폐수급팀 이은원 차장은 “발행 당시 1만 원권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100만 원에 가까운 큰돈이었다”고 말했다.

새 5000원권의 득세는 설날 연휴의 ‘3일 천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 박운섭 차장은 “5000원권의 인기는 설날과 새 돈, 세련된 디자인이 겹쳐 발생한 설날 특수”라며 “중학생에게도 몇만 원을 복돈으로 주고 있는 상황에서 10만 원 고액권이 발행된다면 1만 원권도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 세뱃돈, 훙바오(紅包), 오토시타마(お年玉)

세뱃돈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세시풍속을 빠짐없이 기록했다는 동국세시기에도 세뱃돈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1925년 발행된 풍속지 ‘해동죽지’에는 ‘세배전(歲拜錢)’ 또는 ‘세뱃값’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세뱃돈 풍습은 중국 훙바오, 일본 오토시타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새해 인사를 하면 어른들이 빨간 봉투, 훙바오를 내놓는다. 도시 가정에서 한 어른이 주는 훙바오의 평균치가 보통 근로자의 한 달 월급 수준인 1000위안(약 12만 원)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훙바오 공포증’이 생겨나고, 훙바오가 중국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액수가 크다.

오토시타마의 관행은 에도시대로 거슬러가지만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일본 경제가 급성장한 1960년대로 알려져 있다. 돈을 그냥 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서 전통 문양이나 인기 만화주인공이 그려진 봉투에 넣어준다.

○ ‘세뱃돈 민심’

설날 세뱃돈 민심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원후자(50) 씨는 5000원 신권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30만 원을 세뱃돈으로 준비했다. 경북 문경에서 설을 보낼 예정인데 10여 명의 조카에게 세뱃돈을 줘야 한다. 그는 “매상이 지난해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이 담긴 세뱃돈을 줄일 수는 없어 준비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손님이 “살기 어렵다고 5000원짜리를 주면 머리 큰 아이들이 입을 삐죽거린다”며 거들었다.

최근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2명 중 1명은 세뱃돈 지출 때문에 ‘설날이 두렵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53%는 10년 전과 비교할 때 세뱃돈 지출 규모가 3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고정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은 어린 조카를 만나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는 모두 합해 20만∼30만 원을 받았는데 대학 입학 뒤 세뱃돈 수입이 없어요. 가끔 조카들의 시선을 느끼지만 외면하거나, 떡국 먹고 도망치듯 사라져요.”(이지희 씨·20·대학생)

양병문(22·회사원) 씨는 올해 취업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학생 시절에는 학비 명목으로 넉넉하게 받은 300만∼400만 원을 등록금으로 썼다. 하지만 올해는 20만 원을 조카들에게 줄 복돈으로 챙겼다. 그는 “올해 세뱃돈 수입은 10분의 1로 줄고, 지출은 20만 원쯤 예상한다”며 “새 돈을 주면 조카들이 절약할 것 같아 5000원 신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세뱃돈 5만∼10만원” 26%

올해 친척이나 자녀에게 줄 세뱃돈은 모두 얼마로 예상하고 있을까.

한국의 20대∼40대는 ‘5만∼10만 원 미만’으로 꼽았다. 동아일보 위크엔드가 여론조사회사인 나우앤퓨처와 함께 20∼40대 남녀 1000명에게 ‘설날 자녀와 친척에게 줄 세뱃돈의 총금액’을 인터넷으로 설문한 결과 26%가 ‘5만∼10만 원 미만’을 꼽았다.

세뱃돈 규모는 나이별로 차이를 보였다. ‘5만∼10만 원 미만’은 30대(30.8%)가 가장 많이 꼽았다. ‘10만∼20만 원 미만’이 23.1%로 2위, ‘3만∼5만 원 미만’(20.7%)과 ‘3만 원 미만’(17.1%)이 뒤를 이었다. ‘20만 원 이상’은 8.4%.

20대는 ‘3만 원 미만’이 48.8%로 가장 많았고, ‘3만∼5만 원 미만’(22.5%)이 다음 순이었다. ‘5만∼10만 원 미만’은 15.9%였으며 ‘10만∼20만 원 미만’(8.4%)과 ‘20만 원 이상’(4.5%)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40대는 ‘10만∼20만 원 미만’(33.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후 ‘5만∼10만 원 미만’(31.3%), ‘3만∼5만 원 미만’(13.3%), ‘20만 원 이상’(11.4%), ‘3만 원 미만’(10.8%)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은 ‘5만∼10만 원 미만’(28.8%)을, 여성은 ‘3만 원 미만’(24.8%)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그러나 ‘20만 원 이상’은 여성(10.4%)이 남성(5.8%)보다 많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