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수진]이 뮤지컬을 ‘7세 이상’이 볼 수 있다고요?

  • 입력 2006년 1월 1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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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프로듀서) “사랑해. 진짜로. 근데 수표는?”

(수표 쥔 할머니) “먼저 게임 하나만 하자. 야한 걸로! ‘젖 짜는 숫처녀와 거시기 커다란 총각’ 한판 어때?”

(프로듀서) “나 지금…좀 후달리는데.”

(할머니) “아이∼살살 할게.”

국립극장이 새해 첫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브로드웨이 코미디 뮤지컬 ‘프로듀서스’의 한 장면이다. ‘프로듀서스’에는 ‘안아 줘-만져 줘’ ‘핥아 줘-물어 줘’ 등 등장인물에 붙은 노골적인 별명을 비롯해 성적인 농담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성인 관객이라면 유쾌하게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 공연이 ‘7세 이상 관람’으로 안내돼 있다는 것이다. 제작사 홈페이지는 물론 국내 양대 공연 예매 사이트인 ‘티켓링크’와 ‘인터파크’에는 이 공연의 ‘관람 연령’이 ‘만 7세 이상’ ‘8세 이상’으로 나와 있다. 인터파크의 담당자는 “우리는 대행사이기 때문에 제작사가 준 자료대로 안내할 뿐”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제작사가 적정 관람 연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관람 연령을 따로 표시하지 않지만, 대신 작품 내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연전문지가 많다. 반면 국내에서는 작품에 대한 ‘홍보’만 넘칠 뿐 정작 공연을 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 근거가 되는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프로듀서스’의 제작사는 “13일 첫 공연 후 내부회의를 통해 ‘성적 농담과 속어가 나오므로 어린이의 관람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띄우기로 결정했지만 미처 예매사이트의 자료는 수정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일단 ‘7세 이상’으로 자료를 내고 보는 제작사도 문제지만 ‘공동 주최’인 경우 일반적으로 적정 관람 연령을 제작사와 공연장이 합의하에 정한다는 점에서 국립극장 역시 비난을 피해 갈 수 없다.

오히려 ‘국립’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면 국립극장의 무신경함과 무책임함은 더 지적받아 마땅하다.

17일 초등학교 4, 5학년인 남매와 국립극장을 찾은 한 40대 주부는 “인터넷에서 ‘8세 이상’이라고 돼 있는 걸 보고 왔는데, 애들이랑 함께 볼 내용이 아니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뒤늦게 제작사가 매표소 앞에 붙인 ‘어린이 관람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되레 안타까웠다.

강수진 문화부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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