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두 유대인 거장 탄생 100주년… 학술대회 잇따라

  • 입력 2006년 1월 1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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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인간 본성에서 심오한 철학을 끌어올린 2명의 유대인 철학자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집중조명되고 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와 해나 아렌트(1906∼1975)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이스라엘의 레비나스 연구소와 학회들은 올해 ‘레비나스와 함께한 한 세기’라는 공통주제로 일련의 국제 학술행사를 펼친다. 5월에 미국 퍼듀대에서 북미레비나스학회가 창립되며, 12월 이스라엘의 바일란대에서 열릴 대규모 학술대회를 통해 레비나스 붐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레비나스는 러시아령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소련이 세워진 뒤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 정착했으며 독일로 유학을 가 후설의 제자로 현상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부모와 두 동생을 모두 나치의 학살로 잃고 나치 군포로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레비나스는 나치즘이 인간 주체 중심의 서구철학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반성을 ‘타자의 철학’으로 연결시켰다. 그는 러시아(출생), 유대(민족), 프랑스(활동무대), 독일(독일철학 전공) ‘네 문명의 철학자’라 불렸다.

아렌트는 레오 스트라우스와 함께 20세기의 양대 정치철학자로 꼽히는 독일의 여성 철학자. 올해 독일에서는 그를 기리는 학술대회와 사진과 저작 전시회, 초상화 전시회 등이 개최된다. 7월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민주주의는 기능하는가’를 주제로 열리는 제20차 세계정치학대회에서도 민주주의 정치철학자로서 아렌트가 집중 조명될 예정이다.

아렌트는 독일에서 태어나 하이데거(1889∼1976)와 야스퍼스의 제자였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프랑스로 도피한 뒤 1941년 이후 미국에 정착했다. 이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으며 유대인 학살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참관한 뒤 ‘악의 평범성’을 끌어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표했다.

일반인에겐 낯선 두 철학자는 유럽 대륙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2차대전 중 경험한 유대인 대학살의 기억을 인류 보편의 철학으로 발전시킨 공통점을 지녔다.

레비나스는 우리 존재의 기반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있음을 연애와 자녀의 출산과 같은 일상 속에서 끌어낸 ‘타자의 철학’을 펼쳤으며, 아렌트는 우리의 악한 면모가 특별한 악마성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 발원할 수 있음을 폭로했다.

두 사람은 나치 옹호자라는 의혹을 받은 하이데거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를 비판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다만 하이데거의 제자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던 아렌트는 그를 ‘여우’라고 부르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지만 레비나스는 젊은 시절부터 하이데거 철학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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