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구세군’ 활동…“한푼두푼 온정에 추운줄 몰랐어요”

  • 입력 2005년 12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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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종을 흔든다고 모금함에 돈이 쌓이지는 않는다. 사랑이나 정성, 이런 단어를 써서 감성을 자극해야 지나가는 시민이 발길을 멈추고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본보 염희진 기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구세군 일일 체험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구세군 종을 흔든다고 모금함에 돈이 쌓이지는 않는다. 사랑이나 정성, 이런 단어를 써서 감성을 자극해야 지나가는 시민이 발길을 멈추고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본보 염희진 기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구세군 일일 체험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딸랑딸랑! 또르르….” 그냥 흔들면 되는 줄 알았지만 막상 흔들어 보니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빨리 흔들면 두부장수 종소리처럼 들리고 천천히 흔들면 상여가 지나가는 분위기가 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나면서도 묵직한 맛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해 봐요.” 구세군 한은희(28·여) 사관은 종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떨어뜨리라고 했다. 이때 팔과 손에 힘을 빼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 올리면서 눈높이에 이르렀을 때 순간 손목에 힘을 줘야 한다는 것. 종을 잡은 지 10여 분이 지나자 얼추 구세군 종소리를 흉내 낼 수 있었다.》

8일 낮 12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 기자는 이곳에서 빨간 구세군 잠바를 입고 6시간 가까이 종을 울리면서 자선냄비 모금활동 일일 자원봉사를 했다.

종만 흔든다고 모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말로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정희(36·여) 사관은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란 말은 절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이 “내가 불우 이웃인데 왜 나는 도와주지 않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해올 수도 있다는 것.

구세군이 기부를 권유하는 말은 특별히 정해진 게 없다. 사관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황 사관은 ‘사랑’이란 단어를 유난히 많이 썼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이만한 단어가 없기 때문.

기자도 용기를 내 마이크를 잡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추운 날씨만큼 참기 힘든 고통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사랑’을 강조한 때문일까. 교복을 입은 남자 고교생이 수줍게 다가왔다.

“300원밖에 없는데 이거 넣어도 돼요?”

“정말 소중하게 쓰겠다”고 하자 그 학생은 동전을 냄비에 털어 넣더니 도망치듯 사라졌다.

모피 코트를 걸친 아주머니도 왔다. 얼마나 기부할까. 잔뜩 기대했지만 명품 핸드백 속에서 나온 것은 300원이었다. 7일에는 50대 여성이 1만 원짜리 지폐 100장을 넣고 갔다고 들었지만 기자는 그런 ‘천사’를 만날 수 없었다.

서민들의 인심은 훈훈했다. 한 중학생은 자선냄비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탕을 내밀기도 했고 현금이 없는 서민들은 지갑을 뒤져 각종 상품권이나 전화카드, 복권을 냄비에 넣기도 했다.

상품권이나 전화카드는 구세군 사관들이 자신의 돈으로 사들여 현금화한다. 복권 당첨금도 기부금으로 사용되지만 지금까지 대박을 터뜨린 복권은 없다고 구세군 관계자가 귀띔했다.

한 사람이 돈을 넣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켜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성금을 쥐여 보냈다. 쑥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길러 주고 싶어 한다고 구세군 관계자는 전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이 보이는 사내아이도 힘겹게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아장아장 자선냄비 앞으로 다가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건네자 멀찍이 서 있던 아이의 어머니가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오후 6시경 자원봉사를 마칠 때가 되자 반 근 정도인 종이 천 근같이 느껴졌다. 황 사관은 “온 종일 추위에 떨면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앓아눕는 게 예삿일”이라며 “몸은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일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보람에 하루도 봉사를 거를 수 없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gna.com

■ 자선냄비 77년

구세군 자선냄비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인 박준섭 사관은 서울 종로와 명동 2곳에서 가정용 무쇠냄비로 모금활동을 벌였다.

올해로 구세군의 모금행사가 77주년을 맞았다. 모금액은 첫해 812원에서 지난해 25억6128만 원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목표는 27억 원. 2일 시작된 올해 모금액은 7일 현재 1억8594만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포인트 늘었지만 목표 달성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구세군 관계자가 말했다.

구세군은 모금액을 늘리기 위해 올해 20곳에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자동적으로 1000원씩을 기부하도록 ‘티머니’ 단말기를 설치했다. 또 은행 유치원 편의점 등 전국 7000여 곳에 높이 55cm의 ‘미니 자선냄비’를 선보였다. 누구나 미니 자선냄비를 신청할 수 있다. 구세군 인터넷 홈페이지(salvationarmy.or.kr)를 통해 기부할 수도 있다.

모금된 돈은 △기초생활보호자 구호 △심장병 백혈병환자 치료지원 △복지시설 지원 △실직자 노숙자 지원 △에이즈 예방 및 말기 암 환자 지원 사업 등에 쓰인다.

염희진 기자 salthj@dog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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