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바탕에는 삿갓모자에 흰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 시클로가 달리는 야자수와 낡은 집들의 거리 같은 남방 풍경이 깔려 있다. 그리고 목 잘려 숨진 베트콩의 사진이 걸린 전쟁범죄 전시관, 한국인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라이따이한’의 서러움처럼 우리의 과오가 생채기로 남아 있는 베트남의 현재 얼굴이 담겨 있다. 그간 이 씨의 시들에는 촉촉한 비가(悲歌)의 정서가 흐르고 있어 적잖은 독자들이 가슴에 물무늬가 퍼지는 체험을 해왔는데 이 시집 역시 황혼의 메콩강가에서 부른 ‘이미자의 엘레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 메콩강 삼각주/어느 섬이 아니었던가 하네/열대 풀 무성한 뻘 언덕 돌아들었을 때/물가에 그 부부 광대 나와 있었지/낭군은 젓대 불고/아내는 버들처럼 가는 허리로 춤 추었네/메콩강 주변 사람들이 살아온 천년 세월의 한과 내력/소리와 율동으로 고스란히 보여 주었지/베트남 전에 나갔다가/죽을 고비 열 번은 넘겼다던 낭군/그 낭군의 손 꼭 쥔 아내/두 사람 모두 맨발/금방 그물질 하다가 나온 듯/물에 젖은 아랫도리가 흥건하였네’(‘광대’ 부분)
‘베트남 참전 병사의 노래’ ‘라이따이한’ ‘고엽제’ 연작들은 전쟁의 불길이 핥고 간 땅에 남은 절절하고 구슬픈 사연들을 담았다. 시 ‘베트남 1’은 이 같은 사연들을 나눠가진 한국과 베트남이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부서진 미군 트럭의/타이어는 오려서/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튼튼한 샌들 만들어/벤탄 시장에 내다 팔았던/손재주 많은/베트남 사람들/그 열심히 사는 모습 보노라면/전쟁이 끝나고/총알 담던 탄약통을 못과 연장 넣는 상자로 만들고/대포의 탄피는 잘라서 재떨이로 쓰시던/내 아버님 생각이 난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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