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열두번째 시집 ‘미스 사이공’ 펴내

  • 입력 2005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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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사이공’을 펴낸 이동순 씨. 영남대에서 그에게 시를 배우는 베트남인 여학생 부이판안트 씨는 “시 ‘광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스 사이공’을 펴낸 이동순 씨. 영남대에서 그에게 시를 배우는 베트남인 여학생 부이판안트 씨는 “시 ‘광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중진 시인 이동순(54·영남대 국문과 교수·사진) 씨가 열두 번째 신작 시집인 ‘미스 사이공’(랜덤하우스중앙)을 펴냈다. 그는 이미 미국과 실크로드를 갔다 온 뒤에 그 경험을 시집들로 만든 적이 있는데 이 시집 역시 2003년 초 베트남 호찌민의 투득이란 곳에서 한 달 간 머무르면서 구상했고 최근에야 완성됐다.

이 시집의 바탕에는 삿갓모자에 흰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 시클로가 달리는 야자수와 낡은 집들의 거리 같은 남방 풍경이 깔려 있다. 그리고 목 잘려 숨진 베트콩의 사진이 걸린 전쟁범죄 전시관, 한국인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라이따이한’의 서러움처럼 우리의 과오가 생채기로 남아 있는 베트남의 현재 얼굴이 담겨 있다. 그간 이 씨의 시들에는 촉촉한 비가(悲歌)의 정서가 흐르고 있어 적잖은 독자들이 가슴에 물무늬가 퍼지는 체험을 해왔는데 이 시집 역시 황혼의 메콩강가에서 부른 ‘이미자의 엘레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 메콩강 삼각주/어느 섬이 아니었던가 하네/열대 풀 무성한 뻘 언덕 돌아들었을 때/물가에 그 부부 광대 나와 있었지/낭군은 젓대 불고/아내는 버들처럼 가는 허리로 춤 추었네/메콩강 주변 사람들이 살아온 천년 세월의 한과 내력/소리와 율동으로 고스란히 보여 주었지/베트남 전에 나갔다가/죽을 고비 열 번은 넘겼다던 낭군/그 낭군의 손 꼭 쥔 아내/두 사람 모두 맨발/금방 그물질 하다가 나온 듯/물에 젖은 아랫도리가 흥건하였네’(‘광대’ 부분)

‘베트남 참전 병사의 노래’ ‘라이따이한’ ‘고엽제’ 연작들은 전쟁의 불길이 핥고 간 땅에 남은 절절하고 구슬픈 사연들을 담았다. 시 ‘베트남 1’은 이 같은 사연들을 나눠가진 한국과 베트남이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부서진 미군 트럭의/타이어는 오려서/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튼튼한 샌들 만들어/벤탄 시장에 내다 팔았던/손재주 많은/베트남 사람들/그 열심히 사는 모습 보노라면/전쟁이 끝나고/총알 담던 탄약통을 못과 연장 넣는 상자로 만들고/대포의 탄피는 잘라서 재떨이로 쓰시던/내 아버님 생각이 난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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