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출판인상’ 강태형 문학동네 사장

  • 입력 2005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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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형 씨. 요즘 별명이 ‘강 이사’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물론 부천만화정보센터, 기초예술연대 한국서사학회 등 여러 모임의 이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건 기자
강태형 씨. 요즘 별명이 ‘강 이사’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물론 부천만화정보센터, 기초예술연대 한국서사학회 등 여러 모임의 이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건 기자
강병선(48) 씨. 문단에선 필명인 ‘강태형’으로 알려져 있다. 10년째 출판사 문학동네를 경영해 온 출판인이다. 그가 6일 한국출판인회의가 주는 ‘올해의 출판인상’ 본상을 받았다.

시인 김정환 씨는 “최근 10년간 떠오른 신진 작가의 70%는 문학동네가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꼽아 보니 은희경 신경숙 안도현 성석제 전경린 김영하 조경란 이만교 박민규 씨 등 번쩍거리면서 떠오른 젊은 문인들 대부분이 문학동네에서 데뷔했거나 전기(轉機)를 맞았다. 가히 신진 문인들 사이에선 ‘파워맨’으로 불릴 만하다.

거무스레한 얼굴, 주름이 몇 줄 그어진 이마에, 소금을 뿌린 듯한 흰 수염이 빽빽하게 자란 그의 얼굴을 보면 은퇴한 체육관장이나 낙향한 양계장 주인 같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어도 그렇다. 실제 그는 고교 시절 가방에 글러브를 넣어 다니던 복서였고, 대학 때는 전북 김제에서 소를 40마리나 키우던 영농후계자였다. 그가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한 시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미지 연결이 쉽지 않다.

그는 그런 소싯적 감수성과 추진력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문단에 확고하던 ‘창비-문지’ 투 톱 시스템에 새로운 한 축인 ‘문학동네’를 세웠다. 그가 문인들에게 들인 애정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로 1993년 이문구(2003년 작고) 선생에게 워드프로세서를 마련해 준 일이 문단에서 회자된다. “선생님이 타자기 두드리던 게 생각나 아무 생각 없이 한 대 사드렸다”는 것이다. 이 선생은 이 기억 때문인지 7년 후에 마지막 작품집인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의 원고를 그에게 맡겼고, 이 책은 2000년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어떻게 신진 문인들을 많이 끌어 모을 수 있었는지 그에게 물어봤다. “계간지 ‘문학동네’에 신인 공모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솔직히, 심사위원들이 잘 뽑았지요. 그리고 문학 책 광고를 많이 했습니다. 해당 책 매출액의 15%에 해당하는 광고비를 썼으니, 다른 데보다 두세 배 많은 수준일 겁니다.”

그 같은 광고비는 외국 책 번역본들이 베스트셀러가 돼 준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밀리언셀러가 된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같은 책이다. 그는 “‘람세스’는 국내 출판사 24곳을 돌아서 우리한테 왔다. ‘연금술사’는 애초에 고려원에서 나왔다가 제대로 못 컸다. 우린 처음에 코엘류의 ‘브리다’를 펴내려고 했는데, 코엘류 측이 ‘연금술사’부터 다시 펴내 달라고 했다. 결국 2001년에 이 책을 냈는데, 2년 뒤부터 ‘떴다’. 솔직히 뜬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학이 뜨던 1993년엔 신경숙이 9시 뉴스에만 세 번이나 나왔다.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문학이 중요하다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스포트라이트가 놀랄 만큼 줄었다. 고독한 작업인 만큼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조명을 확 해 줘야 한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처럼 최소한 한 해에 한번 정도 작가들을 위한 화려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젊은 피가 몰려들 거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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