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2005 시단에 新人 단비 쏟아지다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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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시집을 내놓은 젊은 시인들, 김민정 황병승 김이듬 이재훈 씨(왼쪽부터). 섬뜩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과 낯설면서도 환상적인 언어 감각이 빛나는 시집들을 내놓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해 첫 시집을 내놓은 젊은 시인들, 김민정 황병승 김이듬 이재훈 씨(왼쪽부터). 섬뜩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과 낯설면서도 환상적인 언어 감각이 빛나는 시집들을 내놓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해는 뛰어난 시집들이 그냥 나온 정도가 아니라, 거의 쏟아져 나온 수준이다.”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과연 그런가. 몇몇 시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올해 시단이 그랬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개성 강한 시집들이 많이 나왔다.”(황학주) “이상하달 정도로 눈에 띄는 시집들이 많았다. 일단 수적으로 많이 나왔다.”(박상순)

주요 출판사들이 펴낸 신작 시집 수를 보자. 창비가 지난해 10종에서 올해 16종, 문학과 지성사가 12종에서 17종으로 급증했다. 문학동네도 9종에서 10종이었다. 천년의시작이 지난해와 같은 10종을 냈지만, 올해 랜덤하우스중앙과 애지가 새로 시선을 만들기 시작해 각각 9종, 4종을 냈다. 올해가 지난해보다 더한 출판 불황이라지만 시집 발간의 증가 추세는 분명하다.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창비의 김정혜 문학팀장은 “그간 묵혀온 원고들을 올해 대거 소화하자는 실무자들의 판단이 있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은 지난해 말부터 문예진흥위원회(구 문예진흥원)가 시작한 ‘문학 회생프로그램’이 가장 두드러진 이유라고 보고 있다. 문예진흥위는 총 52억여 원을 들여 지난해 10월부터 우수 문학도서와 문예지 게재 우수 문학작품들을 석 달 간격으로 선정해 지원해 왔다. 시집의 경우 올해 9월까지 1년간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된 100종에 대해 2000권씩, 모두 20만 권을 사들여 도서관 등에 배포해 왔다. 김민정 시인은 “이 프로그램이 신진들의 첫 시집 원고를 들고 망설이는 출판사들을 과감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인 차창룡 씨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석 달에 20종씩 지원하면 웬만한 시집은 다 포함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자 4∼6월의 경우 조정권 송재학 최민 같은 이미 공인된 시인들의 시집도 빠졌다. 한 출판사에서 좋은 시집 여러 종이 나오면 몰아서 뽑아줄 수 없기에 부득이 빠뜨린 것이다. 하지만 좋은 시집들이 많이 나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1970년대생 시인들이 대거 첫 시집을 내면서 등장한 ‘기념비적인 한 해’로 꼽힌다. 두드러진 신진은 김민정(30) 황병승(35) 김이듬(36) 이영주(31) 이재훈(33) 김근(32) 유형진(31) 등이다. 독자 확보가 쉬운 소설의 경우 1970년대생 소설가들이 이미 첫 작품집을 낸 지 오래다. 하지만 같은 세대 시인들은 올해 일제히 첫 책을 들고 나와 시단에 강한 개성과 충격을 던졌다.

문예진흥위 지원받은 출판사의 시집 수
출판사시집(종)
창비14
문학과지성사13
문학동네 6
민음사 6
실천문학사 5
천년의 시작 4
문학사상사 4
문학세계사 4
세계사 4
랜덤하우스중앙 3
2004년 10월부터 2005년 9월까지.

문학평론가인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생 시인들이 김명인 이성복 황지우 시집을 공부하면서 컸다면 1970년대생 시인들은 외국의 문학 영화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시에 번역 투가 나타나는 반면 강렬한 개성들도 드러난다. 우선 대중문화 코드와 산문화된 긴 시들이 눈에 띈다. 또한 예전엔 비교적 객관적인 비유를 썼다면 1970년대생 시인들은 자기만의 시각 이미지와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

계간 ‘창작과 비평’ ‘문예중앙’ ‘작가’는 여름호 등을 통해 이들 신진을 조명했는데 김민정 김근 김이듬 황병승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김민정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는 가장 큰 논란을 빚었다고 할 수 있다. 엽기, 그로테스크의 기조 위에 신성모독 사디즘 마조히즘 노출증 등을 대담하게 풀어놓았다. 권 교수는 “반(反)윤리의 미학이랄 수 있지만 젊고 엉뚱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면도 돋보인다”고 말했다.

김근의 ‘뱀소년의 외출’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환상적 이미지들로 죽음과 가족에 대한 부정 의식을 그렸다. 김이듬의 ‘별 모양의 얼룩’은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몸을 경쾌하게 시로 다뤘다는 점이, 황병승의 ‘여장 남자 시코쿠’는 잔혹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과 능숙한 언어 감각이 두드러졌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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