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블링크’…첫 2초의 직관을 믿어라

입력 2005-11-12 03:01수정 2009-10-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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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사진 제공 21세기북스
◇블링크/말콤 글래드웰 지음·이무열 옮김/352쪽·1만3000원·21세기북스

1983년 9월. 유럽의 미술상 장 프랑코 베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폴게티 박물관을 찾았다. 기원전 6세기 쿠로스 조각상을 소장하고 있으니 1000만 달러에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박물관 측은 저명한 지질학자인 스탠리 마골리스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는 조각상에서 표본을 채취한 뒤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고해상도 입체현미경, 전자현미경, 전자 마이크로 분석기, 질량분석계, X선 회절장치 같은 첨단 장비가 총동원됐다. 14개월이 지난 뒤 조각상은 진품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러나 박물관 큐레이터 아서 휴턴은 못내 찜찜했다. 구매에 앞서 그리스 조각의 세계적 권위자인 토머스 하빙에게 조각상을 보여 주었을 때 그는 신음하듯 외마디 소리를 뱉었던 것이다. “프레시!”

새것 같다니? 그것은 2000년도 훨씬 지난 조각상에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하빙은 “물건에 처음 눈길이 닿는 순간 ‘직관적인 반발’의 파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년 뒤 이 조각상은 모조품임이 판명된다. 어떻게 해서 하빙은 조각상을 보자마자 불과 2초 만에, 단 한번의 눈길만으로 그것이 가짜임을 알아보았을까?

이 책은 바로 그 같은 ‘첫 2초’에 관한 얘기다.

책 제목 ‘블링크’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가리킨다. 첫인상, 첫 느낌, 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아주 찰나에 스쳐 가는 듯한 그 무엇. 우리는 흔히 그것을 감이라고도 하고 순간적인 직관, 통찰이라고도 한다.

세상을 꿰뚫어보는 첫 2초에 주목하라! 이게 저자의 주문이다. 신속한 결정은 신중한 결정만큼이나 좋을 수 있다는 것.

“우리 뇌에는 단숨에 결론으로 도약하는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단지 느낌은 아니다. 일종의 생각, ‘직관적 사고’다. 빠른 것이 꼭 덜 다듬어지거나 덜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흥미진진한 사례가 넘친다. 말의 표정만으로 경마 결과를 예측해 부자가 된 경마조사원이라든지, 단 2초간의 강의 장면을 보고 교수의 자질을 정확히 평가하는 학생들이라든지, 부부의 15분짜리 비디오테이프만으로 15년 뒤 이혼할 가능성을 내다보는 심리학자라든지….

놀랍지 않은가? 그게 ‘적응 무의식’의 힘이다.

물론 순간 포착이 만능은 아니다. 본능은 종종 우리를 배반한다.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몸속의 컴퓨터도 시스템이 엉키거나 빗나갈 수 있다. 고장날 수도 있다.

그러나 순간 포착의 힘은 교육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첫 2초의 기적’은 운 좋은 소수에게 마술처럼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라 모두가 갈고닦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 “무엇보다 판단에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히 정보를 축적하고 의식을 훈련시켜야 한다. 본능을 학습시켜야 한다.”

순간의 미덕? 우리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이 강력한 진실은 기실, 뼈를 깎는 노력과 고뇌의 산물이었던 거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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