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History]박물관 문화재 수난사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18분


코멘트
1905년 러-일전쟁때 일본군에 약탈되었다가 100년만에 돌려받은 북관대첩비.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05년 러-일전쟁때 일본군에 약탈되었다가 100년만에 돌려받은 북관대첩비.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러했듯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도 애환의 역사였다. 소장 문화재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 애환을 들여다본다.》

○ 일제의 약탈을 견뎌낸 인고의 세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 끝에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서 있다. 늘씬하게 솟아 올라간 몸매, 세련된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지붕돌) 등 조형미가 대단하다.

이 탑엔 유랑 100년의 사연이 담겨 있다. 이 탑의 원래 위치는 북한 지역인 경기 개풍군의 경천사. 유랑의 시작은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에 온 일본의 궁내성 대신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는 고종 황제가 경천사탑을 자신에게 하사했다고 속인 뒤 도쿄(東京)로 밀반출했다. 한국과 일본 안팎의 비난 여론이 일었고 1918년 돌아왔다.

탑은 크게 훼손됐고 해체된 상태로 경복궁 회랑에 방치됐다가 40여 년이 지난 1959년에 보존 처리가 이뤄져 경내에 복원됐다.

그러나 훼손이 그치지 않아 1995년 전면 해체 보수에 들어갔다.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0년간 보수 과정을 거쳤다. 이후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고난도의 조립 작업 끝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개성→일본→서울→대전→서울로 옮겨다니는 유랑을 100년 만에 마감한 것이다.

이번에 일본에서 100년 만에 되돌려 받은 북관대첩비도 마찬가지. 북관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의병장 정문부가 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함북 길주에 세웠던 비석.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약탈해 도쿄 야스쿠니 신사의 외진 곳에 방치했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돌아오다

미술관 불교조각실의 국보 119호 ‘연가7년이 새겨진 부처’(고구려 539년). 이 불상의 수난사를 들어보면 가슴이 철렁할 정도다.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 반 경 서울 덕수궁미술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자리) 2층 전시실. 경비원은 이 불상이 사라지고 한 장의 메모만 덩그러니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메모의 내용은 이러했다.

‘문화재관리국장께 알리시오.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다고. 잠시 후 11시에 국장께 연락하겠소.’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과 경찰은 발칵 뒤집혔다. 범인은 오전 11시 반, 오후 3시, 오후 6시에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밤 12시에 돌려주겠다”는 말만 남기곤 끊어버렸다. 수사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날 밤 11시, 문화재관리국장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범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한강철교 제3교각 16,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시오.”

모두 한강 철교 밑으로 달려갔고, 불상은 무사했다. 그러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6·25전쟁의 총탄을 견뎌내다

역사관 금석문실의 국보 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560년대). 이 순수비는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이곳을 방문했다가 세운 비다.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있었다.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은 1972년, 훼손을 막기 위해서였다.

비석의 뒷면을 보면 10여 개의 구멍이 있다. 6·25전쟁 때 총탄을 맞은 상흔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흔적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대영-루브르는 약탈 박물관?…로제타 스톤-모나리자 등 사연 가득▼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영국 대영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엘긴 마블’…. 세계적인 박물관이 자랑하는 문화재다. 그러나 이 유물들은 프랑스 영국이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 유물엔 절절한 사연이 가득하다.》

○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의 수난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박물관의 휴관일이었다. 이날 아침 한 청년이 전시실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 유유히 전시실을 걸어나갔다. 경비원들은 박물관 직원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작품을 떼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난 사건이었다. 범인은 2년 뒤인 1913년 11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놀랍게도 20대의 이탈리아 화가였다. 그의 밝힌 범행 동기는 이랬다.

“모나리자를 조국의 품으로 돌려주려고 했다. 이탈리아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약탈해 간 나폴레옹에 대해 복수하고 싶었다.”

이듬해인 1914년 1월, 모나리자는 루브르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무사 귀환이었다. 하지만 모나리자에게 루브르박물관은 여전히 타향인 셈.

○ 대영박물관 문화재의 타향살이

대영박물관 소장품 중 상당수는 영국이 여러 나라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기원전 2세기). 1799년 프랑스 군인이 이집트에서 발견했고 이후 19세기 초 영국이 강제로 뺏었다. 이집트가 반환을 요구해 왔지만 대영박물관은 요지부동. 이집트 사람이 만들고, 프랑스 사람이 발견해 영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 그 로제타 스톤의 수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물(기원전 5세기)도 마찬가지. 19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대사였던 엘긴 경이 조각물을 뜯어내 반출한 뒤 대영박물관에 팔아넘긴 것이다. 그리스가 반환을 간청했고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 잠시라도 대여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 이집트국립박물관 투탕카멘의 위기일발

1996년 9월 어느날, 이집트 카이로의 국립박물관에서 20대 청년이 투탕카멘의 순금제 보검을 양말 속에 감추어 나오다 현관에서 붙잡혔다. 전날 밤, 박물관 전시대 밑에 숨어 유물을 훔친 뒤 다음날 아침 밖으로 나오다 덜미를 잡힌 것이다. 경찰에서 밝혔던 범인의 말이 충격적이다.

“박물관은 일단 폐관하고 나면 간섭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물건을 훔치기에 너무 편하다. 가정집을 터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이번 실패는 아마도 ‘파라오의 저주’ 때문인 것 같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