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살풀이춤 장금도씨 ‘기생춤꾼’외면 아들에 처음 꽃다발 받아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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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아들 이영철 씨로부터 무대에서 꽃다발을 받아든 어머니 장금도 씨. 사진 제공 서울국제무용제
50년 만에 아들 이영철 씨로부터 무대에서 꽃다발을 받아든 어머니 장금도 씨. 사진 제공 서울국제무용제
《한국 전통무용계 원로들의 무대였던 ‘전무후무’의 공연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강선영(태평무) 김덕명(양산학춤) 김수악(교방굿거리춤) 문장원(입춤) 이매방(승무) 장금도(민살풀이춤) 씨 등 평균 연령 81세인 원로들의 명무(名舞)가 차례로 펼쳐졌다.》

“걷는 것은 두려워도 춤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이들은 무대에 들고 날 때 다른 이의 부축을 받기도 했지만, 춤출 때만큼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춤사위를 보여 줬다. 마지막 춤 순서가 끝나자 이 공연 연출가인 진옥섭 씨가 무대로 나와 “객석의 불을 켜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장금도(77) 씨를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영문을 모른 채 무대로 나온 장 씨는 객석에서 한 초로의 사내가 올라와 꽃다발을 건네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남자는 장 씨의 외아들인 이영철(60) 씨였다.

연출가 진 씨는 “어머니가 기생 춤꾼이라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해 불화했던 가족과 장 선생님이 꼭 50년 만에 화해하시게 됐다”고 사연을 설명하다가 목이 메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장 씨는 이날 아들이 자신의 공연을 지켜본 것을 알지 못했다.

12세 때 기생이 된 장 씨는 전북 일대에서 춤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 나가는 것을 피하려고 어느 집안의 후처로 들어갔다. 아들 이 씨를 낳았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다시 기생으로 나섰다. 그러나 아들이 열 살 되던 해 “엄마가 친구네 집 잔치에서 춤을 췄느냐”고 울며 대들자 그날로 춤을 작파했다. 꼭 50년 전 일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TV 국악 프로그램도 보지 않았다”는 장 씨는 심지어 한복을 입으면 행여 ‘기생’ 태가 날까봐 양장만 고집했다.

장 씨는 전통무용계에서 ‘민살풀이춤(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살풀이춤)’을 가장 고형(古形)에 가깝게 출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아들 때문에 자신의 재주를 숨기고 살아온 탓에 이날 무대에 선 6명 중 유일하게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전날인 8일 ‘전무후무’ 공연을 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공연 직후 출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어떻게 하면 장 선생님도 인간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느냐”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장 씨가 아들과의 약속을 깨고 50년 동안 무대에 선 것은 서너 차례. 장 씨의 춤을 아까워한 몇몇 무용인사들의 설득에 못 이겨서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세탁소에 한복을 맡겨 놓은 뒤 가족에게는 “나들이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나서야 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아들 이 씨뿐만 아니라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녀까지 와서 장 씨가 무대에 선 모습을 지켜봤다.

“어머니가 춤추는 것을 처음 봤다”는 아들 이 씨는 “어머니가 나 때문에 인간문화재 지정도 못 받으셨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라도 마음껏 춤을 추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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