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만해문학상 받은 北 작가 홍석중 평양서 만나다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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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연회장에서 홍석중 씨(왼쪽)가 할아버지 홍명희의 삶과 작품 ‘임꺽정’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펴낸 강영주 상명대 교수(오른쪽)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24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연회장에서 홍석중 씨(왼쪽)가 할아버지 홍명희의 삶과 작품 ‘임꺽정’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펴낸 강영주 상명대 교수(오른쪽)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20∼25일 평양 백두산 등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 참가한 북한 대표 가운데 홍석중(洪錫中·64) 씨는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북한 현역 작가다. 그는 지난해 ‘황진이’로 남측의 만해문학상을 받았으며,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그는 대회 기간 시종 호방한 태도를 보였으며, 정식 인터뷰를 허용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자신과 문학에 대해 성의껏 들려주었다.》

그는 1941년 서울에서 나서 일곱 살 때 할아버지인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를 따라 월북했다. 1957∼64년 인민군 해군에서 복무한 뒤 1969년 김일성대를 마쳤다. 그는 작가로서 자기 기량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말했다. 자신이 성공한 것은 일종의 당성(黨性)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을 했다.

“주석님(김일성 주석)께서 1979년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 뒤로 역사소설가의 대가 끊어질 것 같다고 걱정하셨는데,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면모)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차세대) 역사소설가 후보 6명에 나를 포함시키셨다. 내가 1984년 ‘높새바람’(삼포왜란 당시 항쟁을 다룬 역사소설) 상권을 펴내자 가장 먼저 읽은 분은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셨다. 잘 썼다고 하시더니 외국 구경을 보내주셨다. 러시아와 동독을 돌아보고 왔다. (남측에선) 우리의 (작가 선발) 제도를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참 행운아였다.”

홍 씨의 할아버지 홍명희는 북한에서 내각 부수상을 지냈고, 아버지 홍기문은 북한 사회과학원 부원장을 지냈다. 증조부는 한일강제합방 당시 충남 금산군수로서 할복한 홍범식이고 둘째 형 홍석형은 내각 부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노동당 함북도당 위원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씨는 만해문학상 상금 1000만 원을 받았으며, ‘황진이’의 영화 판권과 할아버지의 작품인 ‘임꺽정’ 인세를 합쳐 최소 25만 달러(약 2억5000만 원)를 남쪽에서 받게 된다.

“상금과 인세를 어디에 쓸 거냐”고 묻자 그는 “내 맘대로 쓰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장군님이 작가들에게 만들어 주신 집필실인 우산장 보수에도 쓰겠다. 나도 이제 원로다. 후배들은 1만 권 낼 책도 5000권 만 내는 경우가 있다. 후배들도 돕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남측에서 나온) ‘황진이’의 인세 상당 부분을 전달받지 못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격을 주장하는 이다. ‘황진이’가 (남북 저작권 교류의) 첫 발자국인데 성실하게 서로 대우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대회 폐막식장에서 한국 작가 김하기 씨가 자신의 작품집 ‘완전한 만남’을 건네주자 “반갑다”며 책을 받아 들었다. 1996년 중국을 찾았다가 취중에 두만강을 통해 입북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김 씨가 “그때 홍 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 되더라”고 말하자 홍 씨는 빙긋이 웃었다.

“요즘 무슨 작품을 쓰느냐”는 질문에 홍 씨는 “지금은 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문학은 뿌리가 같다. 꽃을 피워나가자”고 덧붙였다.

평양=권기태 기자 kkt@donga.com

▼北보현사 방문 동국대 홍기삼총장▼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한 홍기삼 동국대 총장(오른쪽)에게 보현사의 정명 스님은 “1년에 세 차례 법회를 연다. 부처님 오신 날과, 깨달으신 날, 열반에 드신 날이다”고 말했다. 보현사=권기태 기자

묘향산 보현사. 1042년 창건된, 남북한을 통틀어서도 대표적인 고찰(古刹)로 꼽히는 곳이다.

분단 후 한국 신도들로부터 멀어진 보현사를 24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았다. 바로 99년 전 보현사가 창학(創學) 자금을 보탠 동국대의 홍기삼 총장(문학평론가)을 비롯한 민족작가대회 남측 대표단원들이 방문한 것.

이날 홍 총장과 황종연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시인 고은, 평론가 백낙청, 소설가 황석영 씨 등이 보현사 대웅전으로 들어서자 가사 장삼 차림의 정명(正明·45) 스님이 나와 반기며 ‘반야심경’을 외웠다

정명 스님은 “보현사는 전쟁 중에 상당 부분이 무너졌지만 1970년대에 새로 조성했다. 사회과학원의 학자들이 고증해가면서 새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홍 총장은 “1906년 ‘명진학교’(현 동국대) 창학 자금을 댄 17개 사찰 중 북한에는 보현사 외에도 금강산 유점사, 강원 고산군 설왕리의 석왕사, 함남 함주군 경흥리의 귀주사,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동의 신광사가 있지만 전쟁 중 거의 소실됐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터나 일주문으로라도 남아있는 이들 사찰을 10월 중 조계종 총무원과 함께 모두 방문해서 예불을 드리고 내년 개교 100주년에 18만 명의 동문들에게 창학 사찰의 근황을 알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홍 총장은 “보현사는 다보탑 석가탑 등 탑파와 사찰 전각이 상당 부분 보존되고 있어 다행”이라며 “앞으로 북한 승려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계관시인 오영재 - 서정시인 동기춘▼

남북 민족작가대회에서 얻은 중요한 수확 중 하나는 제한적이나마 북한 문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문학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 북측 집행위원장은 장혜명(47) 시인. 작고한 오극렬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사위인데다, 시인으로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북한 문학계의 실무 중추를 맡고 있는 그는 “잔칫상 차린 사람으로서 남쪽 손님들이 불편한 게 있을까 염려된다”며 남쪽 작가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월북한 오영재(70) 시인은 23일 함께 백두산에 오른 남측의 이기형 시인이 “나도 가족이 북한에 있는데, 너와 내가 같은 처지다”라고 말문을 열자 서로 안고 눈물을 흘렸다. ‘철의 서사시’ ‘대동강’ 등 서사시가 있으며 김일성 상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현재 북한의 유일한 계관시인으로 알려졌다.

동기춘(66) 시인은 1970년대 이후 북한 서정시를 개척한 대표 시인. 그는 2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대연회장의 개막연에서 남측 문인들의 손을 잡고 “오늘을 보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젊은 여성 시인 박경심 씨는 백두산에서 자작시를 낭송했다. 이번 대회 북측 단장은 김병훈(76)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장이었다.

평양=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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