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 입력 2005년 6월 25일 0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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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주젠룽(朱建榮) 지음·서각수 옮김/424쪽·1만6000원·역사넷

오늘의 우리에게 한국전쟁 연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율할 참화를 겪고도 반세기 동안이나 평화체제를 안출하지 못한 채 다시 대파국과 대타협의 갈림길에 직면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몽매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고도 부끄럽게 한다.

이 책은 해외에서 진행된 수준 높은 한국전쟁 연구의 하나에 속한다. 1991년 이 책의 초판이 일본에서 나왔을 때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문제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중국 내외를 통틀어 가장 앞선 연구의 하나였다.

분석은 네 차원에서 진행된다. 대미 관계, 대소 관계, 중국 공산당 내부, 그리고 중국과 북한·한반도 관계가 그것들이다. 그중 백미는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내의 참전 결정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중국은 개전 직후부터 미국과의 교전 가능성을 예상해 전쟁 준비를 진행하였으나 참전에 대한 찬반 양진영의 대립은 월경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참전을 불과 15일 앞둔 10월 4, 5일의 정치국 확대회의 개최 시점까지도 참전 찬성파는 마오쩌둥(毛澤東)을 포함한 한두 명에 불과했던 반면 나머지 간부들은 압도적으로 참전 반대였다. 미국의 힘, 준비 부족, 국내 안정, 경제 우선 등 반대파의 근거는 적지 않았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침략저지’를 명분으로 한 마오의 강력한 참전드라이브로 반대의견은 소멸하였다. 그러나 마오 자신이 참전 이틀 전인 10월 17일, 중국군이 압록강변에 집결해 있던 상황에서 다시 출동정지명령을 내리는 등 반전은 거듭된다. 최종 결정과 월경 명령이 내려진 것은 놀랍게도 참전 하루 전인 10월 18일이었다. 이토록 거대한 세계적 사건이 하루 전까지도 긴박한 반전의 연속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이성적 측면보다는 운명적 측면을 상념케 한다.

오늘의 한반도문제 논의와 해결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중국의 역할을 유념할 때 동북아 냉전체제 형성의 결정적 계기였던 한국전쟁과 중국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선즈화(沈志華), 천젠(陳兼) 등 다른 중국계 학자들의 연구와 함께 이 책이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본 수준 높은 연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역시 한국과 북한의 자료와 연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사태이니 한국자료를 보라는 국수주의적 주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객관적 역사상을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한 서구 연구들에 비해 한국의 연구, 예컨대 중국과 북한자료를 섭렵한 이종석의 중국 참전 연구가 더 수준이 높다. “프랑스 자료를 보지 않고는 일급 프랑스 혁명사를 쓸 수 없다”는 상식이 여전히 거부되는 세계의 한국전쟁 연구 경향을 보면서, 한국에서 전개된 가장 세계적인 사건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라면 우리 학문이 나아가야 할 지향과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금 무겁게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화둥(華東)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일본 도요가쿠엔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원제 毛澤東の朝鮮戰爭(2004년 개정판).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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