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문학상]오문자씨 ‘우리 집의 훈훈한 인간접목 이야기’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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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와 인제대 백병원이 공동주최하고 한국MSD가 후원한 제5회 투병문학상 공모에는 환자는 물론 간호를 맡은 가족과 친구 등 모두 121명이 투병기를 보내왔다. 신경림, 이경자 씨 등 유명 문인과 국립암센터 소속 의사이자 시인인 서홍관 씨, 본보 건강의학팀 김상훈 기자가 심사해 14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쌍둥이 형제간 골수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오문자(경기 군포시 산본동) 씨의 ‘우리 집의 훈훈한 인간 접목 이야기’가 최우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우수작을 요약해 소개한다.》

환갑을 지내고 보니 인생은 병이고 세상은 병원이란 말이 실감난다.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지 못한 치료는 치료가 아니며 그것 자체가 불치병”이라고 말하셨다.

시아버지는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각종 묘목도 가꾸었는데 약한 나무도 좋은 나무와 접목하면 큰나무가 된다며 접목을 시도하곤 했다. 그리고 새로운 종(種)이 오르기 전까지, 여러 날을 그것을 들여다보며 지냈다.

시아버지는 슬하에 일란성 쌍둥이인 남편과 시아주버니를 뒀다. 우애가 깊은 쌍둥이 형제였다.

20여년 전인 1984년 3월 초 시아주버니가 입원했다는 전갈이 왔다. 만성 골수 백혈병으로 생존 기간이 채 2년도 안될 것 같다는 진단이었다.

그때 시아주버니의 나이는 겨우 45세. 초등 4, 6학년의 두 아들과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었다. 칠순이 가까운 시부모와 큰 동서를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4월 초 어느 날 남편은 신문을 보다가 “우리나라 의술로 백혈병을 고친대. 골수이식 수술로 고쳤대!”라며 흥분했다. 성모병원 김동집 내과 과장과 김춘추 의사에 대한 기사였다.

그 길로 남편과 나는 성모병원을 찾아가 상담했다. 수술을 하려면 우선 환자와 골수가 맞아야 하고 아직까지는 수술 성공률이 20%밖에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국에서 세 번째로 시도되는 골수 이식 수술을 위해 시아주버니는 1984년 6월 17일 당시 서울 명동에 있던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시아주버니의 몸에 보통 암 환자가 쓰는 분량의 60배 이상의 강력한 항암제를 투여해 악성 종양을 만드는 골수를 전부 죽이고 3일 후 남편의 골수를 뽑아 이식시킨다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설령 수술이 실패하더라도 후세에 다른 사람들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거기서 보람을 찾자”며 씁쓸히 웃었다.

그 후 남편은 걸핏하면 중환자실에 입원해 2∼3시간 혈소판을 뽑았다. 남편과 시아주버니의 피를 대조한 결과 혈소판, 백혈구의 과립구, 기타 인자들이 90% 이상 똑같다는 통보도 받았다.

1984년 8월 17일 낮 12시 반. 남편이 침대에 실려 2층 외과 수술실로 들어갔다. 남편의 척추 근처 허리에는 열다섯 군데의 구멍이 생겼다. 긴 안테나 같은 주사기로 살을 헤집고 뼈를 뚫고 골수를 빼내기를 열다섯 번. 그렇게 해서 모은 골수가 1200cc 였다. 그간의 고통을 어떻게 필설로 다할 것인가.

나는 시아주버니의 병실로 다가갔다. 형은 생각과는 달리 평화로운 모습으로 동생의 골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 후에도 수시로 백혈구를 빼내 형에게 건넸다.

시아주버니는 그해 9월 20일, 의사와 간호사의 축하 전송을 받으며 퇴원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보름 후 재발소식을 듣게 됐다.

시아버지는 마당의 묘목을 만지며 “접목하기엔 너무 병이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까짓 병균이 아무리 독하다 해도 똘똘 뭉친 우리 가족애는 못 무너뜨린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아주버니는 임종하면서 남편에게 “건강하게 내 몫까지 살아달라”며 눈을 감았다.

이제 시부모도 모두 돌아가시고 남편은 5년 전 뇌중풍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우리 집의 끈끈한 가족애는 살아 숨쉬고 있다.

나무토막 같이 굳은 남편의 다리와 얼굴을 풀어 주기 위해 큰아들이 물리치료를 자처하고 나섰고 딸은 남편의 굳은 혀를 풀어주기 위해 동화책 읽기 연습을 시키고 있다. 나는 건강식을 마련하려고 채소밭을 가꾼다.

새벽운동을 위해 남편을 부축할 때면 시아버지의 말씀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병든 가족을 치료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불치병이다!”

그러면서 그 시절, 우리 가족이 하나가 되어 시도했던 인간 접목의 값진 추억이 감미롭게 떠오르곤 한다.

▼심사평▼

산천에 봄이 와서 연초록 잎이 피고 꽃향기가 날리건만 어디선가 앓는 사람들이 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생명의 생성은 아름답지만 생명이 소멸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애달프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오문자 씨의 ‘우리 집의 훈훈한 인간 접목 이야기’는 일란성 쌍둥이인 남편이 백혈병에 걸린 형을 위해 고통을 무릅쓰고 골수이식을 한 이야기다. 가족 모두가 똘똘 뭉쳐 수십 번의 수혈과 이식까지 감당하며 투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박영석 씨의 ‘아내여, 내 사랑이여!’는 용혈성빈혈에 뇌경색을 앓는 아내를 돌보는 이야기다. 헌신적인 간병으로 부인의 증상이 좋아진 뒤 부부교사인 두 사람이 처음 사랑을 싹틔웠던 섬마을 학교의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아 가는 대목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김금주 씨의 ‘돈돈돈’은 사업에 실패한 남편 대신 돈을 벌려고 포장마차를 하며 힘겹게 살다가 갑상샘암에 걸려 투병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돈도 소중하지만 생명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등산을 하면서 바위틈의 맑은 샘물과 이슬 품은 진달래꽃을 먹는다.

황선욱 씨의 ‘20년 전쟁’은 정신질환을 앓는 동생을 돌보면서 살아 온 20년 동안의 기록이다. 모든 작품에 상을 주고 싶었다. 한결같이 애달프고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이번 투병문학상에 참여하신 분들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신경림 시인·심사위원장

▼수상자 명단▼

▽우수상(2명)=김금주 박영석

▽가작(3명)=고미영 문경찬 황선욱

▽입선(8명)=곽은영 김경애 류제광 박미정 신영현 장명금 최미옥 한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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