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불멸의 유혹’… 관능 가득한 카사노바의 회상록

  • 입력 2005년 4월 29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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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의 카사노바(왼쪽)와,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1년 동안 사귀었던 마지막 연인인 독일 서정시인 엘리사 폰테어. 카사노바는 그녀와 편지를 나누며 정신적 위안을 얻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청년 시절의 카사노바(왼쪽)와,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1년 동안 사귀었던 마지막 연인인 독일 서정시인 엘리사 폰테어. 카사노바는 그녀와 편지를 나누며 정신적 위안을 얻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불멸의 유혹/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지음/백찬욱, 이경식 옮김/910쪽·2만7000원·Human&Books

노년에 이른 카사노바(1725∼1798)는 쓸쓸하고 초라했다. 그는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에 정통했으며 유럽의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같은 단원이었던 발트슈타인 백작이 소유했던 보헤미아 둑스의 성(城)에서 사서로 지냈지만, 백작이 성을 비우기만 하면 하인들은 카사노바를 집요하고 혹독하게 모욕했다.

호방하면서도 방탕하게 보낸 일생의 추문이 가져온 인과응보였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록’에 담는 것이었다.

그의 생애는 달콤한 연애의 끝없는 징검다리를 달려 왔고, 투옥과 탈옥 결투를 거듭하면서 명성을 떨쳤으나 부실한 사업과 교활한 사기, 도주로 얼룩져버렸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인이었던 그가 프랑스어로 썼던 회상록은 문필가로서 그의 면모를 후세에 드러나게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뛰어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작고)는 “다른 작가들은 상상 속에서 조직해야 하는 일들을 카사노바는 자신의 따뜻하고 관능적인 육체에서 뽑아냈다.

카사노바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상황을 창조한 작가는 발자크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12권에 이르는 카사노바의 ‘회상록’을 압축한 것이다.

도색잡지를 떠올릴 만큼 시각적이고 음란한 대목들, ‘납의 감옥’의 지붕을 뚫고 탈옥하는 스릴 넘치는 장면, 당대 최고의 계몽주의 지성 볼테르를 만나 박학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파리의 뒤르페 후작 부인을 만나 신비주의 지식으로 유혹하고 거금을 사취하는 과정 등은 ‘이게 과연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다 이뤄진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폴란드에서 나와 한 여배우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결투에 나선) 브라니키 백작과 나는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쓰러지는 게 보였고, 나도 왼손을 다쳐 피가 마구 흘렀다. 내가 그에게 달려가자 경기병과 부관이 뽑은 3개의 칼이 내 목을 노리며 가로막았다. 브라니키가 벼락같은 고함으로 그들을 꾸짖지 않았다면 나는 난자됐을 것이다. 나는 달아나라는 왕실 시종장의 독촉을 받고는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달려가던 썰매를 붙잡아 탔다.”

츠바이크는 “카사노바가 비록 허영에 젖긴 했지만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래서 그는 도덕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경험과 기억 그대로를 썼던 것”이라고 평했다.

데이비드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완전본이 “성애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1960년 전까지 출간되지 못했던 유럽의 상황에서 볼 때, 그보다 훨씬 더 적나라한 묘사로 이뤄진 카사노바의 이 기록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로렌스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다 써놓고도 출간할 수 없었던 1928년 무렵, 파리에서는 카사노바의 회상록에 쓰인 하루하루의 일정을 확인하며 카사노바가 익명으로 써놓은 여성들의 이름을 파악하려는 ‘카사노바회’가 만들어져 활동했던 것이다. 원제는 ‘Histoire de ma vie’.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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