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원재]그래도 韓流는 계속 된다

  • 입력 2005년 3월 2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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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보아의 일본 내 매니지먼트 책임자인 SM 저팬의 남소영(38) 이사는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뒤 잠을 설치는 날이 부쩍 늘었다. 일본 측의 처사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당장 다음 달 2일 시작되는 보아의 ‘일본 순회 콘서트’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입장권 예매 결과를 집계한 결과 남 이사의 걱정은 ‘기우(杞憂)’로 판명 났다. 도쿄(東京) 시내에서 열리는 세 차례의 공연은 물론 후쿠오카(福岡),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阪) 등 지방 도시의 공연도 입장권이 모두 매진됐다.

지난달 초 발매된 보아의 앨범 ‘베스트 오브 솔(Soul)’은 냉랭한 한일 기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115만 장이나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남 이사는 “보아의 팬들이 10, 20대의 젊은 층이라 가수의 공연에 정치 문제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 음식점이 밀집한 도쿄 신주쿠(新宿) ‘코리아타운’의 교포 자영업자들도 한국의 반일(反日) 시위가 일본의 한류(韓流) 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했다. 하지만 한국 관련 상품이나 한국 업소를 배척하는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휴일인 27일 저녁 코리아타운에서는 젊은 일본 여성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한류 스타의 얼굴이 새겨진 컵이나 열쇠고리, 브로마이드 등을 골랐다. 가족 단위로 외식을 나온 일본인들이 ‘매운 한국 음식’을 맛보려고 식당 앞의 메뉴판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도 ‘독도 사태 이전’의 풍경과 똑같았다.

배용준, 최지우 등 ‘겨울연가’ 스타의 기념품 판매가 줄긴 했지만 이는 드라마가 NHK를 통해 방영된 지 시간이 꽤 흐른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 한국 상품 유통업체인 ‘한국광장’의 김상렬(44) 상무는 “매출에 영향이 없다는 점에서 한류의 저변이 넓어진 것을 실감한다”며 “다만 ‘한국이 시끄럽다는데 서울로 여행해도 괜찮겠느냐’는 문의가 늘어난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류 열기가 한물갔다’고 부추기는 쪽은 우익 세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매체들이다. 주간 신초(新潮)는 최근호에서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는 TV가 많지만 시청률은 10%를 밑돌며 한류 열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가 지난해 ‘용사마 붐’이 한창일 때 배용준의 나쁜 면만을 들춰 내려 혈안이 됐던 점을 떠올리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공력이 수십 년간 쌓인 끝에 마침내 일본 열도에 싹을 틔운 문화상품이다. 한류 스타들이 벌어들이는 수입과 일본인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는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자발적인 친한파’를 늘린 무형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교포 기업인은 “역사 문제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감정을 앞세워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대다수 일본 사람을 자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일 간의 외교 격랑이 아무리 높고 험해도 한류는 계속돼야 한다. 한류야말로 한국인 스스로가 자신의 잠재력에 놀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 아닌가.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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