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단 거목 월전 장우성 화백…日영향 벗은 독자적 한국화 개척

  • 입력 2005년 2월 2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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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타계한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화백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화의 독자적 유형을 추구한 작가’로 꼽힌다. 젊은 시절 그림과 한학(漢學)을 동시에 연구한 그의 그림은 시서화(詩書畵)가 함께 어울린 문인화적 화풍을 바탕으로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월전은 1930년 스승인 이당 김은호의 ‘낙청헌’에 입문해 초기 10여 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한 감각적 형태의 치밀한 묘사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광복 후 서울대 미대에 재직하면서 수묵화에 정진해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 나갔다.

이당 문하에서 운보 김기창, 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 지 2년 만인 1932년 제11회 선전(鮮展)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해 1941년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 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19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고인은 학이나 백로, 인물, 정물, 산수 등을 즐겨 그렸다. 간결하고 응축된 선으로 대상의 본질적 형태를 창출해내고 그 주변에 여백을 설정함으로써 최대한의 여운을 얻어 내는 화면처리가 돋보였다는 평을 들었다. 1980년대 이후 비판적 현실인식을 가진 문인화의 세계를 펼쳤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깊고 유려한 먹과 선으로 선(禪)의 정적(靜寂)과 탈속(脫俗)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말년이랄 수 있는 2001년 작 인물화 ‘단군일백오십대손’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휴대전화를 손에 든 젊은 여성의 모습을 그릴 정도로 늘 참신하고 창조적인 세계를 펼쳐 왔다.

고인은 2001년에 구순전, 2004년 4월 덕수궁미술관에서 중국 현대화의 거장 리커란과 2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강감찬 장군, 유관순 열사 등 역사적 인물들의 영정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꼽힌다.

박노수 권영우 이영찬 등 옛 제자들과 이종상 오용길 김보희 김대원 조환 이왈종 등 화단의 ‘맹장’들이 그가 길러낸 제자들이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은관장(1976년), 금관문화훈장(2001년)을 받았다. 이날 빈소에는 심재영 이인실 김대원 씨 등 제자들이 조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조화를 보내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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