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유러피언 드림’…민족 초월한 EU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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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제러미 리프킨 지음·이원기 옮김/552쪽·2만2000원·민음사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의 저자가 이번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물론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다. 그러나 무한한 기회와 희망, 그리고 낙관의 땅이었던 미국이 이제 세계인이 동경하는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고 저자는 본다. 신분 상승의 꿈은 1970년대까지의 이야기일 뿐,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부의 세습은 더욱 일상화됐다.

저자는 몰락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체물로 유럽연합(EU)이라는 새로운 꿈, 즉 ‘유러피안 드림’을 제시한다.

EU는 일단 삶의 질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EU의 국내총생산(GDP) 10조5000억 달러는 미국의 GDP를 넘어섰고, 10만 명당 의사 수는 322명 대 279명으로 EU가 우세하다.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 가운데 영아사망률도 미국보다 EU가 훨씬 낮으며, 평균 수명도 78세 대 76.9세로 EU가 높다. 부의 분배, 소득 불균등, 살인사건 발생 건수, 교도소 수감자 등의 통계를 통해서도 미국은 EU보다 훨씬 뒤떨어진 삶의 질을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삶의 질 같은 가시적 실체를 넘어서는 유러피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의 근본적 차이에서 21세기 인류의 이상을 찾는다.

이른바 ‘유럽 합중국’인 EU는 1000여 년에 걸친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딛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족국가를 초월한 미래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즉 영토와 주권으로 대표되는 민족국가라는 근대의 틀을 벗어 던진, 초영역적인 통치기구로 21세기에 걸맞다. 유러피안 드림을 구체화할 EU헌법은 그 초점을 영토, 민족, 시민으로부터 인류와 지구라는 보편적인 것으로 옮겼다. 따라서 인간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괄성을 증진하며, 인권과 자연권을 으뜸으로 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이 헌법이야말로 싹트는 유러피안 드림의 씨줄과 날줄이며 새 시대로 인류를 인도하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유러피안 드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의 염세주의와 냉소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지난해 5월 영국 BBC 인터넷 뉴스는 서아프리카 국가 기니의 30대 남성이 겪은 유러피안 드림의 실체를 보도했다. 많은 돈과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유럽에 왔지만 그가 겪은 것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대우였다. 그는 “유러피안 드림은 악몽이었다”고 말했다.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이상과 유럽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유러피안 드림은 그저 백일몽에 그칠지 모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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