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입양으로 입국 亞여성 인권침해 급증

  • 입력 2005년 1월 2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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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김모 씨(34)와 결혼해 지난해 4월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여성 A 씨(25)는 지금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편지를 주고받던 6개월의 연애기간에는 너무나 친절했던 남편이 결혼식을 치르기가 무섭게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해댄 것.

급기야 지난해 12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남편이 술에 취해 LPG통과 라이터를 들고 와 “같이 죽자”고 위협하는 바람에 A 씨는 한겨울에 속옷 차림으로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A 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좋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국이 내게 남긴 것은 몸과 마음의 상처뿐”이라며 치를 떨었다.

최근 2, 3년간 국제결혼이나 입양 등을 통해 입국하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나 이들이 폭력 등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많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인간 이하의 대접=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 거주 외국인 여성은 모두 1만9214명.

이 가운데 중국 여성이 1만3373명(70%)으로 2003년의 7041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으며,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도 각각 1403명과 944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문제는 국제결혼의 증가에 비례해 이들에 대한 가정폭력 등 인권침해도 늘었다는 것. 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한 달에 많아야 10여 건이던 외국 여성들의 상담 건수가 지난해 11월부터 하루에 3, 4건, 한달에 100여 건 정도로 늘었다.

지난해 전남지역 ‘여성의 전화’가 국제결혼한 외국인 여성 1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 이상이 “남편이나 시댁 식구에게 구타 및 성폭력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 중국인교회 박정남 집사(39·여)는 “인격모독이나 폭력뿐만 아니라 돈을 사기당했다고 호소하는 여성도 있고, 일부는 처자식이 있으면서도 이른바 ‘첩실’로 삼으려고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혼도 못 해”=무엇보다 이들 외국 여성은 잦은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청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한국행을 택한 이들은 이혼할 경우 불법체류자가 돼 버려 강제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관련기관에 상담을 의뢰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경찰 신고나 이혼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

서울 중국인교회 최황규 목사(41)는 “결혼 2년이 지나면 남편의 동의 아래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를 약점으로 잡고 더욱 못살게 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인권센터의 최진영 상담실장(44·여)은 “이혼하는 여성들은 평생 한국에 대한 증오심만 품은 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면서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보호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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