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보이체크’…현대인의 슬픈 초상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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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다시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보이체크’.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지난해에 이어 다시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보이체크’.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보이체크’는 지난해 초 같은 곳에서 공연돼 호평 받았던 작품이다. 게오르그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을 당시 러시아의 연출가 유리 부드소프와 국내 유명 배우들이 함께 만든 연극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는 부드소프가 만들어 놓은 연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함영준 씨가 연출을 맡았고, 마리(이혜진) 대위(이남희) 백치 카알(오만석) 등 일부 배역의 캐스팅이 바뀌었다.

가난한 군인 보이체크는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자신의 몸마저 인체 실험용으로 의사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아내 마리는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가고 이를 안 보이체크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지난해 호평 받았던 무대는 그대로다. 30도로 가파르게 경사진 무대의 모습과 바닥에 불규칙하게 뚫린 구멍을 통해 나오는 조명불빛은 불안한 내면과 불길한 결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신체 연극(Physical Theater)’을 내건 부드소프의 연출 의도는 춤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연극의 시작과 끝은 모두 탱고다. 첫 장면에서 10여 명의 배우들은 탱고 음악에 맞춰 10kg이나 나가는 긴 외투를 입고 강렬한 군무(群舞)를 펼친다. 위태롭게 경사진 무대에서 보이체크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붙잡혀 억지로 춤을 춘다. 마치 억압된 사회구조 속에서 휘둘리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처럼.

마지막 장면의 군무에서는 죽은 보이체크 대신 목 잘린 인형이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배우들은 파트너 대신 자신의 외투를 끼고 홀로 춤을 춘다.

하지만 연출자와 배우가 바뀐 탓인지 지난번 공연에 비해 극의 강약 흐름과 배우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떨어진다. 보이체크를 맡은 박지일의 연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돋보였지만 새로 바뀐 다른 출연자들과의 호흡은 아쉬움을 남겼다. 바뀐 캐스팅 중 오만석은 무난히 제 몫을 소화해냈다. 18일까지. 화∼금 오후 7시 반, 토 4시 7시 반, 일 4시. 02-580-130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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