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공각기동대’ 후속 ‘이노센스’…‘철학의 빈곤’

  • 입력 2004년 9월 29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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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공각기동대’의 후속편으로 9년 만에 내놓은 ‘이노센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압도적인 비주얼을 통해 던진다. -사진제공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일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공각기동대’의 후속편으로 9년 만에 내놓은 ‘이노센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압도적인 비주얼을 통해 던진다. -사진제공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미래 사회 인간과 기계의 경계,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사이버 펑크라는 충격적 스타일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년)에 담아냈던 일본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 그가 9년 만에 후속 편 ‘이노센스(Innocence)’를 내놨다. ‘인간은 왜 하필 자신을 닮은 로봇을 만들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이 영화는 전편에 비해 더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섹스머신 기능을 갖고 있는 애완용 사이보그 가이노이드(소녀형 로봇)가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역시 사이보그인 경찰 공안9과의 버트가 사건 수사를 맡는다. 일본계 폭력단 홍진회, 자신의 전뇌(電腦)를 해킹하는 킴 등을 만나며 버트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운데 전편 ‘공각기동대’에서 컴퓨터 네트워크의 바다로 사라졌던 쿠사나기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이 영화는 ‘철학적’인 게 아니라 ‘철학적인 체’하는 영화다.

‘인간을 닮은 인형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이 99분짜리 애니메이션이 내놓는 결론은 이렇다. ‘만약 인간 자신을 닮지 않은 로봇이 만들어질 경우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탁월한 시각이지만, 문제는 ‘이노센스’의 철학적 내용들을 쫙 쥐어짜면 이 한 문장밖에는 남는 게 없다는 거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 운운은 이미 익숙해서 용도 폐기된 얇은 화두일 뿐이다.

철학적 빈곤을 드러내는 이 영화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탈출구는 두 가지다. 하나는 화려한 수사들을 열거하며 그럴듯하게 보이려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숨 막히는 비주얼로 보는 이의 혼(또는 판단력)을 쏙 빼놓는 것이다.

중국의 화려한 문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른바 ‘차이니스 고딕’이라고 명명된 ‘이노센스’의 비주얼은 시신경을 마비시킬 정도로 압도적이다. 비둘기가 날고 거대한 코끼리상이 등장하는 미래사회 축제 장면의 90%가량은 손으로 그렸고 10%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었는데, 실사와 그림 그래픽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며 동시에 쓸쓸하다.

문제는 ‘대사’다. 데카르트, 공자, 밀턴, 다윈에서부터 공리주의, 실용주의, 중국 고시(古詩), 자연도태론, 성경을 넘나들며 휘황한 수사와 인용을 1분이 멀다하고 쏟아낸다.

‘셸리의 시에 나오는 종달새는 인간들과 달라. 깊은 무의식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삶이 뭔지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까. 공자님 말씀이지….’ (대사 중)

결국 이야기의 극적 구성에 실패한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위대한 업적인 ‘적게 말하고 치명적으로 깨닫게 하기’를 다시 성취하지 못하고 수다스러운 비주얼 철학서에 머문다.

하녀용 로봇 섹서로이드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속삭인 다음 한 마디는 ‘공각기동대’의 성공 후 ‘인랑’(각본) ‘아바론’(감독) 등의 작품을 통해 별다른 철학적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오시이 감독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와·줘·요….”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10월 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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