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그곳에선 눈도 귀도 즐겁다

  • 입력 2004년 9월 6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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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4일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북하우스 전경. 검게 물들인 긴 나무들을 촘촘히 이어 붙여 외벽을 감쌌다. 700여 평 규모인 북하우스는 전시 공연 공간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옥외 공간,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사진제공 헤이리조직위원회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4일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북하우스 전경. 검게 물들인 긴 나무들을 촘촘히 이어 붙여 외벽을 감쌌다. 700여 평 규모인 북하우스는 전시 공연 공간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옥외 공간,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사진제공 헤이리조직위원회
가을빛이 완연한 4일 오후,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 쪽으로 달리다 통일동산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니 ‘예술마을 헤이리’란 표지가 나온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5만평 야산 자락에 들어선 이 예술마을에는 독특한 건축 양식의 갤러리와 박물관, 서점,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작가, 미술가, 음악가 등 예술인 370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한 헤이리는 예술가들의 삶터이자 창작 기지이면서 외부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97년 첫 삽을 뜬 지 8년 만에 이달 들어 갤러리 6개와 작가들의 작업공간인 스튜디오 8곳이 한꺼번에 문을 여는 등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이 11∼26일 열린다. 정명화, 정명훈이 함께하는 ‘가을을 여는 클래식’ 콘서트(24일 오후7시)가 열리고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였던 김홍희씨가 기획한 ‘기획전’(11∼26일)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주말인 이날 헤이리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과 예술인들로 북적였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이날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북하우스’에선 마침 서양화가 이종구 전(10월3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쌀부대 종이에 충남 서산 오지리 마을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담은 화가의 그림과 긴 나무들을 촘촘히 이어 붙여 만든 건축물이 조화를 이뤘다.

북하우스를 나와 흰 장미가 만발한 언덕길을 따라 걸으니 ‘한향림 갤러리’가 나왔다. 헤이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기도 한 이곳에는 도예가 한향림씨가 10여 년간 수집한 크고 작은 도자기 15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갤러리를 나와 ‘세계 민속악기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이영진씨가 18년 동안 수집한 70여 개 국 450여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색공간이다. 악기에 얽힌 사연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일부 악기는 연주도 해 볼 수 있다.

방송인 황인용씨가 박물관 옆에 개관한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에는 벌써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겉보기엔 커다란 창고 같은 데 건물을 열고 들어가니 탁 트인 음악감상실이 나왔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음악소풍’이라는 이름의 공연이 열리고 LP 1만여 장에서 엄선한 노래들과 와인 한 잔이 제격이다.

지친 발걸음에 쉴 곳이 없을까 둘러보니, 눈 아래로 싱싱한 생선 가운데 토막처럼 날렵하게 생긴 타원형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 이종욱씨가 운영하는 ‘반디 북카페’로 벽면 가득 3000여권의 책이 꽂혀 있다. 나지막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차 한 잔을 마신다.

카페를 나와 마을 중앙으로 가면 늪지공원이 나온다. 늪지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에 조각가 정현의 움직이는 조각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초가을 바람에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늪 주변 길 위 벽돌에 설치작가 안규철씨가 ‘사랑’ ‘망각’ ‘인연’ 등의 단어들을 새긴 작품도 보인다.

페인트 대신 녹물이 벌겋게 배어난 철판과 동판 등을 소재로 한 헤이리의 건물들에는 멋쟁이 예술인들의 감각이 잘 드러나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파주=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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